인간은
누구나 어릴 때 과거 시골생활의 단편적인
기억들이 아직도 자기를 황홀하게 하고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심을 갖게 한다. 그리고 나이
들어 차츰 노년이 되면 많은 경험과 지식으로
이성(理性)은 고양되겠지만 감성(感性)은 오히려
동심(童心)의 세계로 회귀하게 된다. 이와 같이
노년의 감성은 차츰 아름답고 선(善)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일까? 이는 피카소가 “모든
어린이는 한 사람의 예술가인데 그가
자라나면서 어떻게 화가로 계속 남아나는 것이
문제이다”(Every child is an artist. The problem is how to
remain an artist once he grows up - Pablo Picasso) 라고 한
말에서도 대답을 찾을 수 있듯이 화가의 마음과
자질은 어릴 때부터 태생하여 차츰 자라나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그림이
걸린 방은 바로 생각이 걸려있는 방 (A room hung
with a picture is a room hung with thoughts - Joshua Reynolds)
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좋은 화가는 그저
생각할 시간밖에는 없는 사람 (A good artist has less
time than ideas - M.Kippenberger)
이라고 하는 말과 같다. 따라서 그림 작품에는
화가 스스로도 어떤 생각을 그려 넣는다는
사실이 중요하고 감상자로 하여금 어떤 확실한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그림을 동경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그림의
목적은 평면적인 화면에서 무엇인가 떠올라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듯이 그리는데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결국 대상과 소재의 형태와
더불어 섬세한 감정까지 전달되듯이 옮겨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 것과 일치하고 있다.
사실
그림은 보는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을 단순히
머릿속에 집합시켜 버린다. 좋은 그림일수록
인간의 숭고한 정신세계(精神世界)를 심오한
감상(感想)으로 빠지게 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그림은 모든 것을 집합(集合)시키고
완성(完成)하는 것으로 [완전한 예술]이 되고
있으며, 따라서 회화(繪畫)가 모든 예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되는데 이는 순간에
모든 감각을 한꺼번에 농축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Portrait
Paintings-------
사람의
얼굴 자체는 뛰어난 예술품이라고 흔히 말하고
있다. 예술품이 되는 조건은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희소성(稀少性)에 있을 것이고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가치(價値)를 느끼게 하는 대상물일 것이다.
또한 인간의 얼굴 속에는 고유의 생각과 철학이
담겨져 있고 그 사람의 독특한 정신(精神)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니 좋은 초상화란 참으로
고귀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인간의 얼굴이
예술품으로 손색이 없다면 회화 등의 예술적인
수단을 빌려서 작품으로 만든다면 더욱 값진
일이 될 것이며 따라서 화가의 애정어린 눈으로
그림 속에 담긴 사람들은 더없이 가치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예술품으로서의 인간의 개성적인 모습을 다시
그림으로 작품화한다는 것은 예술행위의 으뜸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초상화 한 점을 실내에
걸어두면 분위기를 압도(壓倒)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고(思考)하는 존재이며
초상화라는 그림에서 풍기는 그만의 생각이
더욱 짙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눈동자에서
그리고 시선을 멀리 던져도 눈 가장자리에서
풍겨 나오는 한 인간의 사고와 지식과 교양 등이
합쳐서 흘러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국내의 조각가 한분이 외국에서 전시회를
가지면서 그 일대의 갤러리를 돌아보다가
우연히 소녀를 그린 초상화를 쳐다보다가
평생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예술적인 감흥(感興)을
가장 크게 느꼈고 본인이 조각가임에도
불구하고 왜 초상화라는 평면작품에서 발이
얼어버릴 정도의 충격을 느꼈는지 모른다는
말을 들어보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참으로
매력적인 그림을 누구나 그려보고자 동경(憧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현대적인
초상화는 정확한 심리묘사가 으뜸인 것 같다.
과거에도 우리 조상들도 초상화를 그릴 때
외양보다 내면정신을 그린다는 전신사조(傳神寫照)
즉 인간의 외모는 변하지만 불변하는 본질, 즉
정신을 추구하고자 했던 선조들이 지닌
초상화에 대한 중요한 인식이었다. 완벽한
외형의 묘사와 그 사람의 됨됨이까지를 그림을
통해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사조(寫照)란
작가가 관조한 대상의 외형을 묘사하는 것을
의미하되, 전신(傳神)은 그 대상 속에 숨어 있는
정신을 그려내어야 하는 것으로 따라서 이 말은
형상을 통해 정신을 드러내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얼굴 모습은 바로 인간 내적(內的)의
사고(思考)를 나타내어야 하지만 자연에
대하여는 가급적 생명력이 있는 외적(外的) 감동(感動)을
나타내어야 한다.
Landscape
paintings-------
우리가
보는 모든 물체는 흩어지고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세잔느는 “그림이란 영원히 그 자연을
맛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고
하였으며 “자연이란 쫙 벌어진 손가락들을 꽉
잡아서 흩어지게 못하게 잡아 묶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모네는 자연속의 황홀한 색채는
화가들로 하여금 하루 종일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하며 환희와 더불어 고뇌하게 하는
것이다 (Colour is my day-long obsession, joy and torment -C.Monet)
라고 말하였다.
예술의
기능과 역할을 자연의 모방(模倣)이다고
하였는데 인간 활동의 원동력은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예술이란 인간이 자연에서
차츰 소외(疏外)되기 시작할 때부터 만들어 낸
것으로 자연이 우리의 눈앞에 놓여 있다면
인간의 가슴속에는 자연스레 예술이 생겨나기
마련인 것이다. 또한 인간은 자연을 대하는
마음에서 창의력과 탐구심이 가진 창조가가
되어야 한다.
노년까지
만성 관절염의 고통 속에서 두 손마저 뒤틀린
가운데 그림 작업을 이어간 르노와르는
팔레트와 붓을 놓으면서 비로소 너희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만년에도
그의 그림 속에 나오는 인물의 눈빛은 항상
온화하고 행복한 이유로는 그림이란 소중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니 인간의 아름다운
마음을 그렸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림을
그리는 목표와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다.
모든
화가들은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은 한편의
그림이고. 남에게 살아 숨 쉬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 바로 행복인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도 그림이란 자기실현(自己實現)의
도구인 것 같다. 그림작업을 통하여 자기만족을
느껴보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리고
그림제작은 그림전시를 통하여 사회와 서로
소통을 할 수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 누구나 마찬가지로 남다른 희열과
만족 대신에 이루어지는 과정은 작품소재에
심적으로도 많은 고심을 하여야 하는 관계로
사뭇 부담스럽고 또한 여러모로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기에 충분한 것 같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애정어린 도움을 준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속해 있는 안양미협등의 여러 단체의
회원들의 뜨거운 성원과 특히 화랑 관계자들의
후원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