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유화로 그린 초상화 

고종황제(1852~1919 조선 26대왕)의 초상화

 

한국에서 유화로 그린 초상화는 고종황제의 전신 초상화와 당시 황태자인 순종의 초상화 및 문신 민상호의 초상화 3점이다. 작가는 홀란드 출생의 미국인 화가 휴버트 보스(Hubert Vos 1855~1935)로서 모두 1898~1899년 사이에 유화로 그린 작품이다.
보스가 한국을 방문한 기간은 짧았으나 당시의 국내외 정세를 잘 통찰하면서 그의 <자서전> 속에는 한국의 불운과 고종황제의 불행한 일생, 그리고 일본의 횡포에 대하여 쓰고 있으며 덧붙여 한국인의 우수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한국미술의 모든 건축 유적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미술가들을 포로로서 일본에 끌고 가서 미술작품을 만들게 하는 한편 일본인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미술은 오늘날까지도 매우 한국적인데..., 제가 그린 민상호의 초상화를 먼저 그려서 황제가 보신 후 저는 황제폐하 및 황태자의 실물크기 전신 초상화를 그리라는 어명을 받게 되었다. 저는 제 개인이 소지하기 위해 황제의 전신상 하나를 더 그려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저는 황제로부터의 선물, 그리고 황제와 그 백성들의 장래에 대한 슬픈 예감을 안고 한국을 떠났다.”라고 말하고 있다.

 

고종황제의 초상 (Portrait of Emperor Kojong) oil on canvas 199 X 92cm 1899년
태극문양이 새겨진 고종이 입은 의상

보스가 그린 <고종황제의 어진>이나 <서울풍경>을 접한 국내의 화가들은 깜짝 놀랐다. 전통적인 한국화와는 달리 원근법과 색채명암법으로 묘사된 보스의 정교한 그림들은 너무나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로소 국내에서 자연히 서양화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근대미술을 배울 곳이 없었고 가르칠 사람도 없었다. 근대미술의 선구자들은 마침내 서양화가 벌써 전해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야 했다.
고종은 보스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사진과 같은 유화의 사실성에 대단히 만족하였다고 전해진다. 작품 하나는 덕수궁에 보존되던 작품이었으나 1904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없어졌고 똑같이 그린 다른 작품은 전신초상화로서 현존하지만 미국에 사는 화가의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에서 2005년에 보스3세의 후손들로부터 고종의 전신초상화를 빌려와서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하였으며 이기간에 국내로 작품매입를 위하여 협상을 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귀한하여야 할 귀중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반입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휴버트 보스는 파리와 브러셀에서 미술을 공부하였다. 그의 작품은 파리와 암스텔담, 브러셀, 드레스덴, 뮤니히 등 여러 곳에서, 1885년부터 1992년에는 주로 영국에서 작품활동을 하였는데 왕립아카데미에서 전시를 하였다. 그는 1891년에 설립되어 현존하고 있는 영국 왕립초상화가협회(Royal Society of Portrait Painters)의 회원이었던 것이다. 이 협회의 초기 회원에는 유명한 오필리아(Ophelia)라는 작품을 남긴 밀라이스 卿(영국 Sir John Everett Millais 1829~1896), 미국의 초상화가의 대부격인 존 싱어 서전트(미국 John Singer Sargent 1856-1925) 및 제임스 휘슬러(미국 James Mcneill Whistler 1834~1904)와 여류화가인 라우라 나이트(Laura Knight 1877-1972) 등이 있었다. 그는 나중에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시에틀에 정착하였다

보스는 중국에서 여황제인 서태후(西太后 The Empress Dowager 1835-1908)의 초상화도 그렸으며 홍콩, 인도네시아,하와이에서도 원주민들을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보스가 그린 서태후(西太后 The Empress Dowager)의 초상 


  문신 민상호(閔商鎬) (1870-1933)의 초상화

보스가 그린 민상호의 초상화는 1898년도에  한국에서는 최초로 그려졌던 초상화 작품이며 사실적인 기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민상호는 1882년 미국에서 1887년까지 6년간 교육을 받고 귀국한 구한말의 문신이다. 보스가 민상호를 그리게 된 동기는 그가 한국인으로 순수한 형이라고 생각하였고, 연초록 선비복을 입은 근엄하며 세련된  모습에서 느끼는 매력과 높은 지식 수준에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1891년 과거 급제한 뒤 예조참의를 시작하여 중추원 의관등을 거쳐 영국·독일·러시아·이탈리아·프랑스·오스트리아 등지에서 공사관과  참서관으로 근무하였으며 나이 설흔살에 서울시장격인 한성판윤과 그후 통신원총판으로 통신 우정사업 등에 종사하였다.이어 경기도 및 강원도 관찰사로 지냈다.

 

 
민상호의 초상 (Portrait of Min, Sangho) oil on canvas  1898

  보스의 <서울 풍경> 

휴버트 보스의 1899년 작품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한말 지금의 정동에 있는 미공사관 쪽 에서 경복궁을 내려다보며 그린 것으로 멀리 광화문, 경회루, 북한산등이 보인다. 시기는 초봄으로 그림 왼편에 보이는 기와집 마당에는 복사꽃이 한창 피어있다. 보스는 1911년 친구에게 보낸 자서전적 서한에서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
한국은 가장 흥미 있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언덕과 골짜기, 고요한 강, 꿈같은 호숫가에 정말로 아름다운 꽃들이 자라고 있었으나, 그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인종 중의 하나로 늘 유령처럼 흰옷을 입고 마치 꿈속에서처럼 조용히 걸어 다닌다.

 

 
서울풍경 (Seoul Landscape oil on canvas 31X61cm 18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