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신간서적 

 
[미국의 인상주의 거장화가 -존 싱어 서전트]
 
 

 

[출판사 평] 

아트월드 출판사는 2013년부터 3년간 미국의 인상주의 미술에 대한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맨 처음에 모네와 지베르니아이츠, 2이었고 The Ten-미국 인상주의 거장들, 2이다. 이어서 모네와 가이 로즈, 미국의 인상주의 걸작선, 5(풍경화, 바다풍경화, 초상화 및 누드화, 인물화, 꽃과 정물화) 모네와 114명의 지베르니아이츠-합권판 발간하였다.

또한 필자는 화가들의 중심적인 모티브와 관람객의 취향으로 자주 찾게 되는 화가가 그린 어머니에 대한 모습독서하는 모습에 대하여 15세기부터 20세기의 거장화가 100명을 선정하여 두 권에 흥미로운 단행본을 발간하였다. 15c-20c 거장화가 100-마음의 우주, 어머니15c-20c 거장화가 100-생각의 우주, 독서라는 책으로 다시 한 번 누구에게나 어머니와 독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으며 필자는 연이어 우주(宇宙) 시리즈를 발간할 예정으로 보인다. 

사실 국내에서는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유럽 인상주의 화가를 제외하고 정작 미국에 파급되어 [불멸의 화풍]으로 크게 발전시킨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책이 전무한 실정에 이러한 전자책(e-Book)의 발간은 고무적인 일이 되고 있다. 이들 화가들은 거의 모네와 같이 지베르니라는 국제적인 화가마을(Art Colony)을 형성하고 초기 인상주의의 핍박을 이겨내면서 창의적인 실험과 체제 확립에 이바지한 중심인물이었다. 

필자가 발행한 전자책은 종이책보다 미술의 원색 그림이 많은 도서출판에서는 가장 적합하다. 이는 종이책의 CMYK(색의 삼원색, 즉 마젠타, 시안, 노랑과 검정을 원색으로 하는 감산혼합減算混合 방식은 명도가 낮아진다)라는 색표현 방식보다 전자책의 RGB(빛의 삼원색, 즉 빨강, 초록, 파랑을 원색으로 하는 가산혼합加算混合은 명도가 높아진다)라는 색표현 방식이 훨씬 원색에 가깝고 선명할뿐더러 현대인의 필수품인 PC, 인터넷 TV, 태블릿, 스마트폰, 전자책 Reader기에서 한번만 구입하면 연동(連動)으로 어떤 장소에서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어 경제적이고 편리하다. 

특히 이번에 발간되는 미국의 인상주의 거장화가, 존 싱어 서전트는 서구 최고의 초상화가이며 인상주의 화가로서 수많은 걸작을 창작한 존 싱어 서전트(John Singer Sargent)를 소개하는 책이다. 이는 국내 미술계와 일반 애호가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고도 남을 것 같다. 왜냐하면 서전트와 관련된 책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단행본으로 100여권이 발간되었고 또한 요즘 한창 인기가 뜨거운 전자책(e-Book)20여권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19c-20c 유럽의 화가들에 대하여 시선을 모았지만 서전트와 같은 미국의 미술계에 이름난 거장들의 움직임에는 사실 등한시 하여 왔다. 다행히 필자는 서양화가로서 작품의 해설에 있어 보다 체험적인 내용을 가미하여 쉽고도 재미있게 접근하고 있다. 작가는 맺음말에서 585쪽에 달하는 내용의 중요한 사항을 다시 정리하였다.  

 

[에필로그] 

존 싱어 서전트(1856-1925)19세기 미국의 초상화 및 풍속 화가였다. 그는 윈슬로 호머(1836-1910), 토머스 이킨스 (1844-1916) 와 함께 빅 3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서전트는 차일드 하삼(1859-1935), 윌리엄 메릿 체이스(1849-1916), 존 알덴 웨어(1852-1919), 시어도어 로빈슨(1852-1896), H. 트와치먼(1853-1902), 토머스 윌머 듀잉(1851-1938), 로버트 헨리(1865-1929), 제임스 글렉큰(1870-1938)과 함께 가장 이름난 19세기 미국의 인상주의 10인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중에서 체이스와 헨리 및 글렉큰을 제외하고 나머지 7명은 모네의 지베르니(Giverny) 시골마을에서 한동안 생활한 지베르니아이츠(Givernyites)이었다. 

서전트는 미국인 부모가 유럽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정착하여 낳았으며 17세까지 부모를 따라 유럽 전역을 여행을 다니면서 문화적, 예술적인 견문을 넓혔다. 또한 부모는 그에게 개인적인 홈스쿨링으로 음악과 문학 및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외국어를 가르쳤다. 이러한 배경으로 그는 국제적인 화가로 성장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을 구비하게 되었다. 그는 어머니가 아마추어 화가인데다 4세부터 드로잉을 시작해서 69세로 죽는 날까지 쉬지 않고 계속했다. 그는 17세까지 로마와 피렌체에서 전문화가가 되기 위하여 개인적인 사사와 미술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가 18세부터는 파리로 진출하여 전문 화가의 생활을 시작하였고 40대 이후까지도 유럽 각국의 미술관을 찾아다니면서 유명한 걸작을 모사(Copy)해 나간 학구적인 화가의 단면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주로 활동한 국가는 17세까지 이탈리아에서, 18세 이후는 프랑스에서 가족과 함께 지냈다. 마담 X작품의 스캔들은 타의반(他意半)으로 그로 하여금 29세에 영국으로 이주케하여 생을 마칠 때 까지 보냈다. 그의 고국인 미국은 20세에 시민권 허가를 위하여 처음으로 방문하였고 국제적인 명성을 날리자 미국에서 초상화 및 벽화의 활발한 주문과 함께 창작과 전시활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화풍은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 익힌 아카데믹의 사실주의 스타일이었다. 스승인 뒤랑에게서 그는 유화 제작 방식 중에 알라 프리마 (Alla Prima) 기법을 익혔다. 23세인 1879년에 서전트는 스승을 그린 카롤뤼스 뒤랑의 초상화를 파리 살롱에 출품했다. 이 작품은 3,000점이 넘는 회화 중에서 당당히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스승의 가르침은 캔버스에 구체적인 드로잉을 생략하고 붓으로 바로 칠하는 브러시 드로잉(Brush Drawing) 방식이었다. 이는 유화 물감이 마르기 전에 순발력과 생동감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또한 인상주의에서 채택되는 기법이며 그가 구사하는 초상화와 유화 페인팅에서 자주 표출되는 테크닉이었다. 그는 스승의 권유로 스페인의 벨라스케스로부터 진취적인 사실주의를 익혀 발전시켰다. 1874년 이후 인상파가 공식적으로 전개된 이후에는 친교가 있는 모네로부터 영향을 받아 파리에서 떨어진 지베르니 하우스를 4년간에 걸쳐 방문하면서 인상주의 화풍을 구사하되 특색 있는 효과를 얻었다.

 

20세기 초부터 서구 미술계의 흐름은 큐비즘 등 추상적 스타일의 예술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꾸준히 고전주의와 사실주의 작품으로 이어갔다. 그의 작품은 진보적 성향의 비평가들에게 변화하는 현실과 동 떨어진 그림으로 인식되어 비평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에도 고전적 그림의 대가인 앵그르, 라파엘, 엘 그레코 등이 내가 찬미하는 대상이고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작업이다.”라고 자신의 길을 잃지 않았다. 

서전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지만 사생활은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여성보다 남성의 누드를 많이 그려서 가끔 오해를 받았다. 그는 34세인 1890년부터 미국의 보스턴 공공도서관의 벽화를 주문받고 나서 신화 등에서 나오는 인물을 그리기 위하여 수많은 남녀의 누드 드로잉을 그려 남겼다. 

또한 그는 주변에 여러 화가를 위시하여 작가, 조각가, 배우, 음악가 등의 예술가들과 우정을 쌓았으며 많은 초상화 작품을 남겼다. 서구 미술계에서 한 화가가 이처럼 많은 예술가들의 초상화를 그린 사람도 서전트 외에는 없을 정도였다. 학자들은 서전트가 26세에 그린 장미를 든 숙녀에서 모델이 된 샤롯 루이스 버카트와는 친밀한 관계였다고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녀는 30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일찍 떠났다. 

서전트의 대표작은 단연 마담 X의 초상화이다. 1884년에 작품이 완성되어 파리살롱에 전시된 이후에는 영국으로 가져가서 보관하고 있다가 31년 이후인 1915년에 미국의 미네아폴리스에서 전시로 재공개되었다. 이듬해인 1916년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이 작품을 1,000파운드로 구입한 이후, 현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에서 나아가 미국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전트는 27세의 젊은 나이로 자신이 먼저 미국 출신인 마담 구토에게 초상화 제작을 제안하였고 파리살롱 전시를 감안하여 모델의 여름 별장에서 최고의 기량을 쏟았다. 아름다움에 압도당한 그는 연필과 유화 및 수채화 등으로 다양한 자세를 취하게 하여 서른 번쯤이나 초상화를 그린 후에야 완성된 것이다.

파리살롱에 걸린 당초의 작품은 어깨끈의 한 쪽은 제대로 이었으나 다른 쪽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려져 있었다. 당시의 비평은 노골적인 나체화보다 더 도발적인 외설 작품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화가가 자기 작품을 세평에 의하여 수정하는 것은 예술가의 자존심으로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빗발치는 여론으로 서전트는 전시기간 중에 작품을 다시 그리겠다고 요구하였고 어깨 끈을 수정하여 살롱에 걸었다. 당초의 그림은 살롱이 찍어놓은 오직 흑백 사진으로만 남았다. 120년이 지난 2005년에 캐나다의 마이크 피존카라는 화가가 흑백사진을 가지고 원작을 복원하여 그려 남아있다.  

서전트는 청년화가시절부터 국제적인 명성이 차츰 오르자 프랑스와 영국 및 미국에서 미술상과 훈장 및 학위는 물론이고 대통령 등의 저명인사의 초상화 주문과 유명 갤러리에서 전시의뢰가 이어졌다. 또한 영국에서는 왕이 기사 작위(Knighthood)를 제안하였다. 프랑스 정부는 영국으로 건너 간 이후에도 최고 영예인 뢰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미국은 서전트를 국내에 체류시키면서 미국화가로 자타가 인정하기 위해 그가 34세인 1890년부터 보스턴 공공도서관의 대형 벽화작업을 전담시켰다. 수차례 이 작업을 완성하는데 에는 1925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해까지 35년의 기간이 흘러갔다. 

영국에서 서전트의 친구이자 미국인으로 활동한 예술가로 헨리 제임스(1843~1916)라는 유명작가가 있었다. 그는 20세기에 가장 뛰어난 미국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흥미 있는 사실은 영국과 미국이 가끔 그들을 자국의 화가와 작가라고 주장한 일이다.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손인 제임스는 미국 뉴욕에서 출생하고 하버드대를 다녔다. 30대 중반인 1876년에 프랑스 파리를 거쳐 런던으로 먼저 이주했다. 그는 서전트와 같이 계속 영국에 거주하다가 죽기 전해인 1915년에 영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제임스는 당시 무명인 서전트를 미국화단에 크게 소개하거나 영국의 고객을 유치하여 소개하면서 서전트를 도왔다. 1913년에 제임스의 후원연합은 70회 생일을 기념하여 서전트에게 초상화를 의뢰했다. 당시 서전트의 초상화 한 점 가격은 1억 원에 가까웠다. 그러나 서전트는 그림 값을 받지 않았다. 초상화를 받은 제임스는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생생하고, 나무랄 데 없는 걸작이라고 찬탄했다. 위와 같이 영국과 미국은 두 사람을 아끼고 자랑했다. 

서전트는 주로 평생토록 900점의 유화를 그렸는데 특히 상류사회의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그의 대형 작품당 초상화 가격은 약 5,000 달러로서 이는 현재 시가로 약 13만 달러이다. 그러나 기회가 될 때마다 유럽과 북미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초상화보다 마음속에 간직한 오랜 열정이었던 인상주의 스타일의 풍경화를 수채화로 남겼다. 특히 평생 2,000여점에 달한 수채화를 그릴 만큼 수채화의 대가였다. 1904년에는 영국 왕립 아카데미에서 수채화협회 정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이와 같이 그에게는 고액의 수수료를 받고 그리는 초상화 페인팅이 작업이었다면 수채화는 일종의 긴장을 식혀주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그의 초상화를 보고 비평가들은 가끔영혼의 화가로 칭하고 있다. 인간의 외면을 충실히 그렸지만 내면의 정체성과 개성을 잘 묘사하는 극찬의 평가였다. 그는 영국의 왕실, 귀족, 예술가, 정치인, 중요인사 등 주로 상류사회 인사의 초상화를 수없이 그렸다. 그가 영국에서 체재할 때에도 미국의 부호와 중요인사들은 직접 서전트의 영국 스튜디오를 찾아서 작품을 의뢰했다. 미국의 대부호인 존 D. 록펠러의 초상화를 완성했던 1917년경에 서전트는 미국을 대표하는 거장화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초상화는 당시 다른 화가들처럼 실내에서 독서와 자연 속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상류층의 기존 초상화 스타일과는 달랐다. 감정이 살아 있는 듯한 초상화와 인물화로 그만의 자유로운 사고와 로맨티스트로서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만의 색깔을 분명히 표출한 초상화는 당대에 큰 인기를 끌었다. 

그가 생각하는 제2의 고향은 프랑스보다 이탈리아와 영국이었다. 이탈리아는 서전트의 예술세계의 바탕으로 풍부한 감정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던 곳이었다. 프랑스에서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 초상화가로 시작하였으며, 30대에 들어 영국에서 초상화 작업과 병행하여 풍경화 작업에 열중했다. 이때 서전트는 영국에 거주하면서 스케치 여행을 통하여 이탈리아의 자연과 고대문화가 주는 경이로움으로부터 창작의 모티브를 이끌어냈다. 이때는 베니스에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주로 베니스와 나폴리, 카프리, 피렌체, 로마, 시실리 등의 도시나 시골의 구석구석 풍경과 풍속을 묘사했다. 그는 일반 화가들과 여행객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도시의 이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다. 풍경화 속에는 부드러운 색채와 질감으로 차츰 잊혀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따뜻한 감성의 세계로 재현하면서 묘사했다. 심지어 그는 흔들리는 곤돌라 안에서 스케치 도구를 지니고 앙각(仰角)의 시점(視點)에 보이는 베니스의 수상 광경도 신비하게 그렸다. 

서전트는 미국이나 영국의 화가라고 보기보다 단연코 세계적인 화가인 코즈모폴리턴(세계주의 Cosmopolitan)의 화가이었다. 이 책은 서전트가 국내에서 처음 되는 경우로 그가 그린 900점의 유화 작품 중에 최대한 많은 작품을 선정하여 해설과 함께 올렸다. 앞으로 독자들에게 유익하면서 재미있는 서전트의 여러 작품과 일화가 계속 발간되었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그의 모든 것은 우리들에게 과거 뿐 아니라 장래에도 인생과 예술에 대하여 귀중한 교훈과 귀감을 선사하고 있다. 특히 모든 예술인과 미술인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좋은 교양의 책이 되었으면 하고 고대해 본다.

 

 

 2015디지털북페어코리아(Digital Book Fair Korea 2015)
 

2014년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된 제1회 국제 e-Book 전시회에 이어 올해에도 인천 송도 신도시의 컨벤시아에서 열리는 <디지털북페어코리아전2015>에 아트월드 출판사가 참석예정 

행사명 : 2015디지털북페어코리아(Digital Book Fair Korea 2015)

행사기간 : 2015.11.12.() ~14() 3일간

행사주제 : New Contents / New Network

행사장소 : 인천 송도컨벤시아 2

관람시간 10:00 ~ 18:00 (17:00까지 입장 가능)

입장료 무료

주최 :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http://www.dbfkorea.com

■ 아트월드 참가

후원 고양지식정보산업진흥원, 한국전자출판학회, 한국중소출판협회, 한국대학출판협회, 학술전자출판협동조합

참가규모/업체 100개사 200부스

프로그램

개막식 / 대한민국전자출판대상시상식및 수상작전시 / 참가기업투자매칭DAY / 국제컨퍼런스 / 투자계획설명회 / 비즈니스피칭 / 비즈매칭 / 기획전시 / 북콘서트 / 아카데미 등

 

 
 
 
 

  2015년 9월 신간서적 

 
[생각의 우주, 독서 (15c~20c 거장화가 100명)]
 
 
 

총페이지 - 273

발간일자 - 2015.9.10

출판사 - 아트월드

가격 - 7,000(e-Book)

저자 조영규 

도서 유통사 - 교보문고, 리디북스, YES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영풍문고, 네이버북스, 다음북스, Google Books

 

[출판사 서평]

아트월드 출판사를 통하여 국내의 중견 서양화가인 조영규화백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의 인상주의 미술을 다룬 전자책을 체험판 4권을 포함하여 16권을 발간하였다. 이는 국내에 아직 미술 분야의 전자책에 대하여 인기가 좋은 콘텐츠의 부족이라는 현실에 비추어 고무적인 일이 되고 있다. 미국의 Amazon에서는 미술서적 분야는 다른 장르보다 종이책에 비하여 전자책의 발간이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종이책보다 전자책에서는 미술 작품의 색채를 더욱 실감 있게 재현할 수 있는 이유에서 기인하고 있다.

종래의 종이책은 CMYK[cyan, magenta, yellow, black(k)] 이라는 네 가지 색()과 검정색을 포함하여 감산혼합 방식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화면의 색과 종이의 색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전자책에서는 빛()3원색인 RGB[red, green, blue]의 적··청을 혼합하여 색을 나타내는 방식이다. 컬러텔레비전과 컴퓨터의 컬러 모니터 및 인쇄 매체가 아닌 기타 빛을 이용하는 표시 장치에서 널리 채용되고 있다. 

사실 국내에서는 서구의 인상주의 미술에서 특히 유럽의 인상파에 대하여 뜨거운 관심과 호응이 있어 왔다. 그러나 미국의 인상주의는 19세기 이후에 출산지인 유럽보다 가장 활발히 전개된 화풍으로 많은 화가들과 작품을 산출하였다. 이들의 화가들은 거의 대부분 유럽 유학파 출신이었다. 처음에는 아카데믹 스타일의 미술을 공부하였으나 파리의 인상주의 전시회를 목격하고 큰 영감과 감흥을 받고 인상주의로 스타일을 변화시킨 개혁파들이었다. 

근년에 들어 교보문고 등의 도서 유통사에서 e-Book에 대하여 업로드 용량을 크게 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저자는 2013년에 발간한 <모네와 지베르니아이츠, 2>을 단권에 합본하여 발간하고 <모네와 114명의 지베르니아이츠>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이는 독자들이 2권에 나누어서 보는 불편을 덜어 드리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PC에 일반화질의 영화 한편을 다운로드 받으면 용량이 대략 2GB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출간한 전자책은 <모네와 114명의 지베르니아이츠-합본판>이 겨우 36.7MB 수준에 달한다. 이 전자책의 용량은 영화 한편에 비하여 불과 1/54에 불과하다.

저자는 올해에 특색적인 책을 2권을 발간하였다. [15C~20C의 거장화가 100]을 선정하여 2권의 시리즈 책을 발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화가들이 가장 관심 있게 관찰하고 묘사한 모티브 중에는 어머니의 모습독서하는 모습인데 가장 훌륭한 작품을 골라 편집하고 있다. 그 제목은 <마음의 우주, 어머니><생각의 우주, 독서>라는 타이틀이다. 저자는 앞으로 계속하여 우주(宇宙) 시리즈를 계속하여 출간할 예정임이 틀림없다. 다음의 글은 화가가 책속에서 맺음말을 기록한 부분이다. 독서에 대하여 조선의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선생과 세계적인 독서광인 빌 게이츠의 사례를 들고 있다. 

[에필로그]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많은 작품을 직접 보기를 원한다.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 여행을 갔을 때에도 가장 먼저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아간다. 현재 서구의 미술관은 약 80%가 인물화와 초상화 장르가 차지하고 있다. 그들의 전통문화는 자연중심보다 인간중심의 사회로서 인간의 연구에 힘을 쏟은 결과였다.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과 건축 속에도 인간의 여러 형상을 반드시 포함시키고 있다. 따라서 서구 화가들은 인간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많은 작품을 캔버스에 남겼다.

유화의 시작은 15세기에 네덜란드의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 1393-1441)에 의하여 실험적으로 발명되어 많은 초상화가 그려졌다. 특히 인물과 초상에서 그 오묘한 피부의 색채를 표현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이 바로 유화 물감인데 7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원래의 색채는 그대로 보존되어 인물이 마치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수백 년 동안 화가들이 가장 즐겨 그리는 주제 즉 모티브(Motif) 중에는 바로 독서(讀書)하는 모습이 그 중 하나이다. 아름다운 사람이 책을 읽는 모습이야말로 그림 중에 가장 고귀한 그림이 되었다. 그림은 바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데 따라서 책을 읽는 모습은 가장 생각을 절실하게 불러일으키는 매체가 된 것이다. 

종래의 독서는 종이책과 불과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사실 화가의 이러한 독서하는 작품을 통하여 독서에 크게 관심을 가지며 진흥시킨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독서와 독서의 그림은 문명을 진흥시키는 좋은 동력이 되고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종이책이라는 매체는 전자책으로 차츰 바꾸어 가고 있다. 두 가지 책에는 서로 다른 장점이 있지만 전자책은 다채로운 원색과 동영상 및 하이퍼링크로 이어지는 연계된 항목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있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 보는 것과 같이 과거 700년 전부터 독서와 관련된 작품이 모두 작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작품을 통하여 배경장면에 나타난 시대적인 풍경도 생생히 보게 된다. 135년 전에 에디슨이 전등을 발명하였으니 그 이전은 촛불과 등잔을 통하여 야간에는 책을 읽었다. 어두운 배경 속에 남녀노소가 독서를 하는 진솔한 광경은 우리의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실내는 물론이고 야외에 나가서도 책을 든 모습은 마치 인간의 생활에서 생명의 원천인 샘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이 책에서는 작가의 생애와 작품 해설을 거의 하지 않았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작품을 대하듯이 순간적으로 다가서는 감흥을 그대로 전달받기 위해서이다. 

즉 회화(Painting)완전한 예술이라고 말한 학자가 있다. 버클리 대학의 미술교수였던 허셀 치프(Herschel B. Chipp 1913-1992)이었다. 그는 현대예술의 이론 (Theories of Modern Art-A Source Book by Artists and Critics)에서 회화는 모든 것을 집합시키면서 완성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그림(Painting)이라는 예술작품을 관람하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단 한 번에 모든 것을 머릿속에 집합시켜 버린다고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회화가 모든 예술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되고 있으며 이런 것은 모든 감각들을 그림 속에 농축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동시에 실제로 뛰어난 그림을 보게 되는 경우 단 한 번의 관람으로 인간의 숭고한 정신세계를 가장 심오한 감상 속으로 빠지게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독서광(讀書狂)인 빌 게이츠 

독서 습관에 대한 부모의 끊임없는 권유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일한 것 같다. 오늘날 세계적인 부호이며 존경받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인 빌 게이츠(William Henry Gates III 혹은 Bill Gates 1955~)는 부모의 소위 <독서기택지호 讀書豈擇地乎>가 독서광으로 만들었다. 

그는 강연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역할 모델은 바로 부모님이라고 서슴없이 말하였다. 빌 게이츠가 기억하는 부모의 모습은 바로 <지식의 보고>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아버지인 윌리엄 게이츠 변호사는 정보의 보고인 책을 더욱 가깝게 여기게 했다. 자라나면서 부모는 항상 아들이 책을 많이 읽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격려하였다. 또한 책에 관한 것부터 시작하여 정치 등 모든 주제에 대해서 토론했다고 한다

빌 게이츠가 독서광 즉 책벌레가 된 것은 최근에 발간된 빌게이츠의 아버지 책인 게이츠가 게이츠에게 : Showing Up For Life에서 잘 밝혀지고 있다빌 게이츠 집은 21남인데 아들 트레이(아버지와 이름이 같아서 집에서는 빌 게이츠를 트레이라 불렀다)는 독서광(讀書狂)이었고 식탁에서도 항상 책, 신문, 잡지를 읽으며 식사했다. 트레이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인 분야는 과학 소설(사이언스 픽션)이었다. 그는 독서에 빠지면 삼매경(三昧境)을 헤매듯 깊은 생각에 빠졌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TV 보는 것을 엄격히 통제했다. 그 대신 읽고 싶다는 책이 있으면 책은 얼마든지 사줬다고 한다

아무튼 빌 게이츠의 부모가 자녀에게 쥐어 준 훌륭한 무기는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능력과 경쟁 사회에서 필요한 의지와 끈기, 또한 비즈니스 마인드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항목은 책()을 통한 정보(情報)를 습득하는 습관이었다. 라고 하니 평범한 진리의 실천이야 말로 더한층 고귀하게  보인다 

퇴계 이황 선생의 독서기택지호(讀書豈擇地乎

조선의 성리학자인 이황 퇴계 선생은 그의 나이 51(명종 6)에 아들 준이 보낸 서신에 답하면서 아들에게 가훈으로 항상 가르친 말이 있다. 독서기택지호 재향재경 유재입지여하이(讀書豈擇地乎 在鄕在京 惟在立志如何耳) 책을 읽는데 있어 어찌 장소를 가릴 것인가? 시골에 있던 서울에 있던 오직 뜻을 세움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이글은 독서에 힘쓰기를 권한 퇴계집의 서신에 나온 글이다. 심지어 이황의 많은 저서, 작품 및 서한 등은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이 약탈해 갔는데 이는 일본의 유학과 성리학을 발전시킨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등 여러 이름난 제자를 기른 스승이었다. 현재 1000원권의 지폐에 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이 동서양에서도 독서에 대한 좋은 사례와 교훈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오늘날 정보사회가 되고 나서는 종이책을 가까이 하는 일이 차츰 멀어지고 있다고 언론에서 지적을 하면서 걱정까지 보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들이 종이책 대신에 전자책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안도 찾을 수 있다. 아직 다양한 콘텐츠의 확충과 값싼 전자책 리더기기의 개발 등에서 부족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이러한 불편은 해소될 것이다. 우리 선조가 책을 발간하기 위한 목판인쇄와 금속활자 인쇄에서 세계 최고로 오래된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루고 있고 또 오늘날 IT분야에서 강국이므로 장차 독서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 쇄신은 낙관하여도 좋을 것이다. 

독자들께서 PC나 태블릿 및 스마트 폰 등의 전자책 매체를 통하여 독서하는 그림이라도 자주 보게 된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독서와 친하게 될지 모른다고 여겨진다. 이번의 책은 조선의 화가를 제외하고 작품의 설명을 거의 하지 않았다. 또한 발간할 원고의 분량이 많아서 한 권으로 편집하기 어려웠다. 보다 많은 아름다운 명화(名畫)를 싣기 위하여 계속 편집하면서 속간을 발간할 예정이다. 

 

[프롤로그] 

책을 읽는 사람은 왜 아름다운가?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생각이라는 우주 속에 스스로가 들어갑니다. 따라서 제목을 생각(生覺)의 우주(宇宙, 독서(讀書)라고 붙여 보았습니다. 다른 책은 마음의 우주, 어머니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우주 시리즈가 되는 것 같습니다. 

현대생활에 있어 국가나 개인에게 가장 중요시되는 화두는 바로 창의력입니다. 창의력은 독서를 통하여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펼치는 환경이 되어야 가능하며, 사실 창의력은 무한한 상상력에서 기인합니다. 또한 개인마다 직접적인 경험의 한계성으로 인하여 간접적인 경험을 넓히는 경우는 바로 독서를 통하여 가능합니다. 현대는 무한한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입니다. 가치 있는 정보를 선택하여 해박한 지식을 쌓는 것은 바로 독서로부터 가능합니다. 

현대의 사회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IT 정보사회]입니다. IT 기술이 발달할수록 종이책의 한계를 차츰 인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전자책은 종이책에서 구현하지 못한 원색의 색채와 멀티미디어 기능을 같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종이책은 색()의 삼원색인 CMYK라는 감산방식에 의하여 구현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자책은 빛()의 삼원색인 RGB라는 가산방식에 의하여 구현되므로 색채구현이 자연적인 색채에 가까워 실감 있게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책은 인쇄술의 발달로 급속히 전파되었습니다. 특히 대량의 책 발간이 가능한 목판인쇄 금속인쇄술 은 한국의 선조들이 세계최초로 발명하였다고 세계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IT기반이 우수하며 이를 통한 전자책에서도 앞장 서 나갈 수 있는 배경을 가졌다고 봅니다.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본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인쇄(印刷)는 글과 그림을 찍어내는 과정입니다. 종래 인쇄는 잉크와 압력기를 사용해서 종이에 찍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에는 목판으로 인쇄된 두루마리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한 점 있으며 이는 자랑스럽게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입니다. 

지금부터 50년 전인 196610월에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했을 때 탑 내부의 사리 봉안을 위한 공간에서 삼층석탑 사리장엄구(佛國寺 三層石塔 舍利莊嚴具)가 발견되었습니다. 즉 은으로 만든 사리 내부·외부의 합과 금동사리합,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및 각종 구슬과 함께 있었습니다. 이는 자랑스러운 우리 신라 선조들의 유물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8세기 중엽에 간행된 것으로, 너비 약 8, 전체길이 약 620되는 닥종이에 189자의 다라니경문을 두루마리 형식으로 적은 것입니다. 불경이 봉안된 석가탑은 751년에 불국사가 중창될 때 세워졌으므로, 704~751년 무렵에 간행된 것으로 봅니다. 현재는 서울시 종로구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소장되고 있습니다. 또한 1967년에 대한민국의 국보 제12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또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은 백운화상 경한(景閑 호는 백운)이 선()의 요체를 깨닫는 데에 필요한 내용을 뽑아 1377년에 펴낸 불교 서적입니다. 크기는 세로 21.4, 가로 15.8cm입니다. 이를 간단히 '직지심체요절', 또는'직지'라고도 부릅니다. 

현존하는 것은 하권 1책뿐입니다. 1800년대 말에 주한 프랑스 공사인 콜랭 드 플랑시가 한국에서 돈을 주고 사 갔으며 다시 프랑스의 경매에서 앙리 베베르라는 골동품 수집가가 108프랑을 내고 샀답니다. 그는 직지심체요절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했고 이는 아직까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 유학한 서지학자인 박병선 박사에 의해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 밝혀졌습니다. 이는 1972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도서 박람회에 공개되었습니다. 또한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선조들은 세계에서 유례가 찾을 수 없는 뛰어난 문화업적을 쌓고 있습니다. 인쇄의 발명은 바로 문명의 발전으로 직결됩니다. 또한 전 국민이 책을 통해 현명한 지혜를 쌓게 되고 자랑스러운 국가와 국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문화 습관과 빈도를 보면 안타깝게도 한국은 최근에 OECD 선진국 중에서도 국민 1인당 책을 읽는 수준이 너무 낮다고 합니다. 중년의 젊은 남자들이 월간 20만원의 술값으로 지불하되 책은 1/10이 되는 오직 2만원의 책구입비를 지불한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습니다. 

책은 종이책에서 전자책의 시대로 이미 진입하였습니다. 미국의 Amazon에서는 2011년부터 전 세계 도서판매에 있어 전자책 e-Book이 종이책을 초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두 가지 유형의 책은 서로 장단점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비추어 일반 대중에 크게 어필하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전자책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전자책의 특징은 단순히 활자를 읽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멀티미디어 기능 즉 책속에 나오는 하이퍼링크로 연결된 용어는 바로 동영상과 다른 지식 사이트로 즉시 연결하여 볼 수 있습니다. 이미 한국의 초 중 고등학교에서도 스마트 교육 을 시범적으로 실시하거나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출발한 이유도 국가발전의 가장 중요한 교육 사업에 있어 그 다양성과 창의성을 기르는데 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교육문제를 걱정하며 한국으로부터 벤치마킹 하자던 오바마 대통령 등의 국가 지도자들도 위와 같은 Amazon의 전자책 보급 현상에 고무되어 이제는 영원한 1등 국가가 되고도 남는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독서를 많이 하는 국민과 국가는 항상 선진국으로 앞서 나가기 때문이다. 

전자책의 활성화는 콘텐츠가 좋으면서 많아야 전자책을 읽는 도구 즉 리더(Reader) 기기가 널리 보급되어야 전자책의 IT기반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독서의 효능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상식으로도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미처 경험하지 못한 세상과의 만남, 모르는 사실과 지식을 간접 경험으로 알게 되는 즐거움, 사고의 확장이 불러일으키는 가슴 떨림, 정서적 교감이 가져다주는 풍요로움,

상대방을 꿰뚫어 보는 직관력 등 입니다.

이번의 책은 사실 본인이 초상화가로서 그동안 많은 자료를 모아 오다가 비록 여러 가지 부족하지만 독서를 진작하고 진흥하는 계기를 만드는데 자극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정과 야외에서 온 가족들이 PC나 태블릿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연동(連動)하여 보면서 널리 활용하여 주면 좋을 것으로 생각하고 발간하여 보았습니다. 

이번에 자료가 많아서 우선 1권에 해당하는 책만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2권의 책에는 프랑스 등 여러 나라의 화가가 다시 포함된 내용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이 책을 보시면 알게 되겠지만 무려 14, 15세기부터 유화가 발명되어 현란한 색채로 사회상과 인물 및 배경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교통수단과 정보 교류가 활성화 되지 못한 편으로 각 나라마다 지역단위로 습관과 문명이 한정된 편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국가별로 화가들 모아서 독서하는 모습을 보도록 편집해 보았습니다. 전기도 없었고 촛불이나 등잔불로 책을 읽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친근감을 느끼게 합니다. 서구 나라들의 간략한 개요를 같이 적었습니다. 이는 이들 나라가 거의 1인당 국민 소득이 4~7만 달러에 달하고 우리보다 예전부터 경제적이나 문화적으로 앞선 나라들이었습니다. 이미 지난 시기인 15세기부터 20세기의 시대에 걸쳐 국제적인 시각에서 회상하여 본다면 우리들에게 과거 우리들의 선조 나라처럼 어떤 다짐이 생기거나 일면 분발과 동시에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견현사제((見賢思齊)’는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즉 현명한 어진 이를 보면 나도 그렇게 되기를 생각하며 바란다는 뜻입니다. 관람자는 책을 읽는 여러 그림에서도 이 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됨 속에서도 작품을 창작하는 화가들이 항상 염원하며 선호하는 대상은 바로 책을 읽는 사람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독서하는 모습 즉 생각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오귀스트 로댕이 제작한 <생각하는 사람> 이라는 조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려진 그림은 단지 감상하는 그림만이 아니라 또한 그림 속에 생각을 그려 놓았기에 더욱 값진 것이 됩니다. 

2015.9

Choyeung Art 스튜디오에서

조영규

 

 

[저자소개] 

저자는 서양화가로 대학에서 영어영문학과를 졸업, 홍익대 미술디자인 교육원 서양화 실기과정 및 서울대 경영대학 경영자과정 수료, 서양화 개인전 (.풍전) 10회 및 연합전 190회 개최, 뉴욕 국제인물화 공모전 입상 등, 현재 개인 스튜디오에서 전업화가로 활동 중. 

저서는 모네와 지베르니아이츠 (2), The Ten-미국 인상주의 거장들 (2), 모네와 가이 로즈, 미국의 인상주의 걸작선 [풍경화, 바다풍경화, 인물화, 초상화 및 누드화 』 ⑤꽃과 정물화] (5),모네와 114명의 지베르니아이츠, 15c-20c의 거장화가 100, 마음의 우주, 어머니,15c-20c의 거장화가 100, 생각의 우주, 독서』『미국의 인상주의 거장화가-존 싱어 서전트

2014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콘텐츠 전자책3권 선정 

현재 한국미술협회, 한국전업미술가협회, 한국초상회화협회, 가톨릭미술가회 회원, 안양미술협회의 회원, 관악현대미술대전 초대작가 

홈페이지 www.choyeung.com

블로그 http://blog.daum.net/choyeungart

http://blog.daum.net/artworld66

http://blog.naver.com/12hojung

 

     2015년 8월 신간서적 

 
[마음의 우주, 어머니 (15c~20c 거장화가 100명)]
 

 

  아트월드
  리디북스 :

 

[책소개]

프롤로그 

15c~20c의 거장화가 100, 마음의 우주, 어머니를 발간하며  

온 국민이 항상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동요(童謠)가 있다. 양주동씨가 가사를 지은 어머니 마음이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누구나 이 노래를 부르거나 들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 노래는 불경 중에서 불설 부모은중경(佛說 父母恩重經)에서 따온 것이다. 주로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다. 불경의 부모은중경은 유교에서 말하는 부모에 대한 효도보다도 부모의 은혜(恩惠)를 더욱 강조하였다.

나를 낳을 때 고통을 받으시며, 마른자리에 아기를 눕히고 진자리에 누우시고(회건취습은 廻乾就濕恩), 젖을 먹이기 시작하여 성인이 될 때까지 길러 주시고, 자식이 멀리 가면 생각하고 염려하시고, 자식을 위해 어떠한 일도 하시면서, 끝까지 자식을 사랑하는 은혜를 말하고 있다. 이 경전에 대하여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던 조선의 정조는 1876(정조 20)에 수원에 용주사를 지어 부모은중경이란 탑까지 세웠다. 또한 김홍도로 하여금 판각화를 새겨 넣은 목판을 발간하여 널리 보급시켰다.  

이번의 책은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서구에서 활동한 거장화가 100명이 자신의 어머니를 그린 초상화 작품과 해설을 실었다. 또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들의 자화상과 더불어 명화작품도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출신은 프랑스 27(쿠르베, 앵그르, 보나 등), 영국 22(로세티, 호가스 등), 미국 17(카셋, 휘슬러 등), 네덜란드가 6(고흐, 렘브란트 등), 러시아 6(레핀, 수리콥 등), 독일 4(뒤러, 킨트 등), 이탈리아 4(티아폴로, 보치오니 등)을 포함한 16개국에서 선정하였다. 그 중에 어려운 시대를 이겨낸 여류화가는 10명이다. 

인간에게 시공을 떠나서 가장 그리운 존재는 어머니임에 틀림없다. 아름답고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과 마음을 시인과 음악가는 글과 노래로 읊었다. 화가들은 물론 초상화로 그려서 평생을 간직한 후에 거의 대부분 후손들에게 유증(遺贈)되거나 미술관에 기증되어 소장되고 있다. 이번의 작품을 보면 주로 살아생전에 그린 작품이 많지만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린 작품도 있다. 화가의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들이나 딸이 화가가 되려고 할 때에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도록 격려와 용기를 심어주었다. 그 덕택으로 영원한 불후의 예술품이 탄생되었다. 자식들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도 초상화를 곁에 두고 살아 계시듯이 그리워했다. 

화가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화가가 그린 작품은 대부분 고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화가는 아름다운 대상을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기도 한다. 그러나 화가의 그림은 모든 관람자에게 삶의 위안을 받기를 원하고 있다. 즉 화가는 고독의 결정체를 작품 속에 남기지만 관람자는 위안을 받는다. 대부분 고독과 고난의 환경에서 생활하는 화가는 고독을 견디어 내는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는 인간이다. 인류가 시작되면서부터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옮긴 초상화는 그림의 주제로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져 왔다. 훌륭한 예술품이란 하나밖에 없는 희소성(稀少性)에 있을 것이고 고귀한 인간의 각자마다 얼굴 모습은 최고의 예술품(藝術品)이 되기에 충분하다. 또한 인간은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의 상()을 본능적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후손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계승하고자 하는 것과 같이 화가는 어머니와 자신의 모습을 초상화로 재현하려고 한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평생토록 탐구한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崔淳雨)는 명언을 남겼다. 아름다움 중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넘어설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겠는가? ()롭고 투명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얼굴이야말로 모든 것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일지니 그래서 인간을 그린 초상화는 그저 단순한 얼굴그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구에서 역사적으로 초상화에 유화를 처음으로 사용한 선구자중의 한 사람은 14세기 네덜란드의 얀 반 에이크(1395-1441)였다. 당시 14세기부터 주로 상류층에만 유화가 그려져 왔으나 17세기부터 네덜란드의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는 일반 서민층까지 광범위하게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하여 현재는 서구의 전체 미술관의 약 80%를 초상화 장르가 차지했다.

미국의 초상화가인 존 싱어 서전트는 나는 초상화를 그릴 때마다 친구 한 사람을 잃게 된다. (Every time I paint a portrait I lose a friend)” 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초상화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사실 초상화 작품은 창작의 어려움도 있으나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각자 인간이라는 예술품을 대상으로 다시 초상화라는 예술로 승화시키기 때문에 더없이 고귀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물론이고 세월이 더해 갈수록 신비한 매력을 지니게 된다.

사실 아름다운 사람이라도 우리는 속마음을 잘 알 수가 없다. 오직 얼굴을 통해서 그나마 읽을 수가 있다. 다른 회화 장르와는 다르게 초상화의 어려움은 대상과 닮은 유사성(Likeness)과 정체성(Identity)이 있어야 한다. 프랑스의 유명한 초상화가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도 제자들에게 초상화가는 먼저 인간의 외형적 특징을 발견할 줄 아는 관상가가, 또한 인간의 마음을 뚫어보는 사상가로, 덧붙여 인간의 내면을 연구하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비극적인 삶을 살아 간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후견인으로 돌보던 의사인 가셰 박사(Dr. Gachet)를 우수(憂愁)어린 표정으로 초상화를 그렸다. 고흐는 동시대의 애끓는 마음을 표현해 보기 위해서라고 동료화가인 폴 고갱에게 말했는데 고흐의 간절한 희망이란 자신과 남들이 작품 속에서 당시 암울한 시대정신과 더불어 치유하려는 마음에서 그린 것이었다. 그는 또한 자화상을 많이 남기면서 자기를 성찰하기 위해서라고 독백했다. 

우리의 사회전체는 초상화 작품을 통하여 훌륭한 선조를 만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레 알게 될 뿐 아니라 자라나는 동심(童心)의 세계에서 원대(遠大)한 꿈을 심어준다. 그러니 초상화는 미술품이지만 역사를 가르치는 훌륭한 교사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영국과 미국 및 오스트랄리아 등지에서는 국립초상화 미술관이 설립되어 많은 소장품에 대하여 관람객의 줄이 이어지고 있다. 초상화는 위와 같은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거장화가들의 어머니를 그린 초상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영국의 유명한 화가 조슈아 레이놀드 경(1723-1792)그림 작품이 걸린 실내는 마치 생각들을 걸어놓은 방과도 같다라고 하였다. 아름다운 자연이나 인간의 모습을 그리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까지 함께할 수 있는 작품을 화가는 진정 남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화가들의 어머니의 마음은 동요 어머니 마음2절과 3절의 가사와 다를 바 없다.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마음/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이 땅에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본인은 초풍전(肖風展)을 열 번 개최한 적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남산의 안중근 기념관에서 개최한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기념 대한독립전으로 독립운동가 42인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번의 책은 초상화가로서 오랫동안 작품을 연구하기 위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펴본 것이다. 15세기부터 600년 동안 서구미술의 대표적인 거장화가 100명이 그린 어머니의 초상화는 각기 특징이 뚜렷하다. 더불어 시대별로 변천된 화풍과 기법을 포함하여 서양미술을 파악할 수 있도록 꾸몄다. 미술을 사랑하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보는 교양도서가 되고, 또한 독자의 어머니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희망해 본다.

2015. 8. 15

스튜디오에서, 조영규

 


 

킨텍스의 [2014 디지털북페어 코리아] -이모저모
 

2014.11.6~11.8일에 일산의 킨텍스Kintex에서 개최된 <2014 디지털북페어 코리어 Digital Book Fair Korea 2014>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한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유일하게 개최되는 <디지털북페어> 전시였습니다. 

본인은 <2014 우수 콘텐츠 전자책>으로 선정됨과 동시에 주위 여러분들의 성원으로 부스전에 참가해 보았습니다. 

현재 미국 등 외국에는 전자책e-Book이 성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국은 킨들[Kindle]이라는 기기를 보급하는 아마존Amazon 등의 보급혁신으로 많은 독서 인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수년전 오바마 대통령이 자주  "한국의 교육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말은 이제 e-Book의 융성으로 앞으로 "미국은 영원한 1등 국가"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한국의 벤치마킹"을 접었습니다. 

참고로 책 뿐만 아니라 종합적인 인터넷 매체인 아마존은 현재 일본, 인도 및 중국에 지점을 진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저조한 독서인구 등의 이유로 인하여 상륙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Google도 최근 국내에 전자책 사업(Google Play 북스)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도 2008.1월에 사람들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It doesn’t matter how good or bad the product is, the fact is that people don’t read anymore, Forty percent of the people in the U.S. read one book or less last year.”라고 했으나, 

불과 4년 전인 2010.4.3일에 애플이 태블릿PC인 아이패드를 개발하고 나서 이 말은 스스로 "불편한 진실"로 되어버렸습니다. 

미국 뉴욕에서는 <디지털북 월드 Digital Book World>이라는 전시가 몇 해전부터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IT의 기반이 우수하면서 전국민이 IT기술이나 첨단기기를 잘 활용하는 환경이지만, S/W의 하나인 디지털북 등의 콘텐츠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입니다. 

본인이 출간한 10권의 책은 [예술-미술]분야의 콘텐츠입니다. 2014년 9월에 <우수 콘텐츠 전자책>으로 문체관부 산하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으로부터 일부가 선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377년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술을 개발하여 종이출판을 이룩한 우수한 민족입니다. 세계의 유명 언론들(BBC,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 타임지)은 금속활자인쇄술이 인간의 역사를 통 틀어서 가장 위대한 발명이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미국의 타임사가 발행한 '더 라이프 밀레니엄(The Life Millennium)'라는 책에서는 지난 천년동안 세계를 변화시킨 100건의 사건 중 금속활자인쇄 발명을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꼽았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디지털 출판Digital Publishing라는 기술을 PC와 스마트 폰 및 태블릿을 연계하면서 최초로 개발하였습니다. 이 분야는 가장 우리나라에 적합하고 장래가 있는 분야로 외국의 전문가들도 말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초, 중, 고교의 종이책 교과서를 대신하여 전부 <디지털북>으로 전환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대학교 교과서 시장을 집중하여 Network 기반의 단말 개발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와 손자와 손녀들은 이제 전자책에 익숙하면서 부자간에 또한 할아버지 할머니와 사이에 의미 있는 대화를 하게 됩니다. 

<아트월드>출판사는 미술분야의 전자책과 앞으로 종이책까지 출간하려고 설립한 출판사입니다. 내년에도 인상주의 미술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분야의 미술책을 발간하려고 합니다. 

www.dbfkorea.com    


킨텍스는 제1, 별도 건물에 제2전시장이라는 거대 건물이 있습니다.  제1전시장의 3홀에 본 전시가 열렸습니다.

제1전시장 현관에 있는 분수시설입니다

아침이 되자 200개의 부스는 각기 준비에 분주합니다

전시장 내부에 별도의 국제 컨퍼런스 및 세미나와 특별 이벤트 장소가 마련되어 성황리에 진행되었습니다

<2014년 우수 콘텐츠로 선정>된 전자책이라는 <페트 게시판>을 준비했습니다

가로 세로 각 3미터의 작은 부스전에는 전자책이라는 보이지 않는 상품을 전시하고 표현하기 위하여 PC와 태블릿을 준비하였습니다.

PC에는 고가의 정품 <아크로뱃 11 PRO>라는 APP를 깔아 2개의 페이지가 스크롤 방식으로 위쪽으로 올라가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방법은 다른 부스에서는 없어 인기를 얻었습니다.

<아크로뱃 11 pro >로 2개 페이지를 스크롤로 위로 올리는 모습입니다.

과거 개인전의 엽서를 전시하고 나누어 주었고 상당량의 리프렛은 3일만에 소진되었습니다


미국의 인상주의 미술 <시리즈> 10권  

2013.  2014년  e-Book 전자책  신간 -소개

 

<2014, 우수 콘텐츠 전자책> 선정

 

디지탈 북 페어 코리아 2014  전시

<Digital Book Fair Korea 2014>

 


 

<스티브 잡스의 초상 Portrait of Steve Jobs> 30x24 in. Oil on canvas, 2011, Choyeung

스티브 잡스는 PC, 휴대폰, 애니메이션, 음악, 태블릿 콤퓨팅과 같이 

디지털 출판 (Digital Publishing)에서도 처음으로 인류문명의 획기적이고 역사적인 장을 열었다.


 


주최 :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전자출판협회, 킨텍스

장소 :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3홀) 부스전

    ■ 일자 : 11월 6일(목)부터 11월 8일(토)까지 10:00~18:00  

▶참가규모/업체 : 100개사 200부스 

전자출판 관련콘텐츠, 솔루션, 플랫폼, 유통사 등

아트월드  부스 전시관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선정한 아래 3권의  <2014, 우수 콘텐츠 전자책>을 포함하여 10권의 미국 인상주의 <시리즈> e-Book 콘텐츠를 전시 


 


 

   모네와 지베르니아이츠    (Monet & 114 Givernyites)

 제1권/  472쪽/  PDF/17.1MB   /체험판 75쪽 

제2권   440쪽  / PDF/18.6MB   / 체험판 68쪽

   The Ten - 미국 인상주의 거장들  /  (The Ten -Masters of American Impressionism)

 미국 인상주의 걸작 1,700선- 장르별 5권 /   ( 1,700 Masterpieces of American Impressionism)

 제1권 / 412쪽 / PDF/21.5MB / (체험판 32쪽)

 제2권 / 409쪽 /  PDF/25.5MB / (체험판 34쪽)

모네와 가이 로즈 (Monet & Guy Rose)

단권 / 263쪽  PDF/14.1MB 

 미국 인상주의 걸작 1,700선- 장르별 5권 /   ( 1,700 Masterpieces of American Impressionism)

(6) 미국 인상주의 걸작 - 풍경화  500선 /  (536쪽, 12,000원)

(7) 미국 인상주의 걸작 - 바다풍경화 270선 / (306쪽, 8,000원)
(8) 미국 인상주의 걸작 - 인물화 350선  / (386쪽, 10,000원)
(9) 미국 인상주의 걸작 - 초상화 및 누드화  340선  / (368쪽, 10,000원)
(10) 미국 인상주의 걸작 - 꽃과 정물화 240선  / (278쪽, 8,000원)

 

  유통사 및 관련기관     


 아트월드 전자책  -미국의 인상주의 미술 <시리즈> 10권


 

 
 

 

 
 

 

 
 

 

 
 

 

 
 

 

 ▢ 요약 -Introduction

 

<오늘날 현대미술에 초석을 이루고 "불멸(不滅)의 화파(畵派)"로 인정받는 인상주의(Impressionism)는 프랑스에서 발아되었으나 미국에서 꽃을 피운 신비의 스토리와 걸작들>

 

미국 인상주의 화가들의 대부분은 1874년 이후 유럽에서 최초로 인상파 전시가 공식적으로 개최된 시기 전후(前後)에 파리 등의 유럽에서 미술공부를 한 유학파들이었다. 그들은 인상파가 아닌 아카데믹 미술공부를 마쳤지만 1886년까지 8회의 전시를 지켜보면서 인상파 스타일에 영감을 받고 1885년부터 모네에 정착지인 지베르니(Giverny)로 찾아 들었다. 모네가 1883년에 정착한지 불과 2년 후인 1885년부터 미국 화가들이 대거 방문하고 시골마을에서 같이 생활했다.

 

19세기 후반에 프랑스에는 인상파 스타일에 대한 이론적(理論的)인 체계가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프랑스 내에는 인상파 화가를 양성하는 학교(學校)가 없었다. 따라서 이들 화가들은 모네의 곁에서 영감을 받고자 하였으며 야외와 실내에서 혁신적인 스타일의 인상파 페인팅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1914년에 독일이 1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자 프랑스는 전쟁의 중심지가 되었다. 1885년부터 30년간 지베르니에서 생활한 화가 및 예술가들은 전 세계 18개국에서 350명이었고 미국은 300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들은 대부분 본국으로 귀국하여 본격적인 인상파의 후진교육과 창작활동을 전개하고 프랑스의 지베르니와 같은 화가마을(Art Colony)을 전국에 조성하고 야외 페인팅에 주력했다.

 

뉴욕의 북부지역에 올드라임(Old Lyme)이라는 화가마을이 특히 유명하게 되었고 『플로렌스 그리스울드 미술관』이 설립되어 현재까지 인상파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로부터 미국의 인상주의는 제2세대의 후진화가들이 대거 양성되기 시작했다.

 

미국 인상주의 걸작선 전5권에는 미국의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263명을 골라 무려 140년 전부터 명화(名畵)로 인정되고 있는 훌륭한 1,700개를 실었다. 

종래 국내에서 주로 소개된 유럽 인상파 화가들과 같이 비교하여 보는 것도 현대미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은 테블릿과 스마트폰 및 e-Book 리더 등의 모니터로 볼 때 확대시키더라도 선명한 이미지를 볼 수 있도록 편집시부터 최대 1,500픽셀의 화면크기로 크게 작업하였다.

 


 

 

□ 출판사 서평 

■ 저자 

저자는 서양화가로서 개인전을 10회에 걸쳐 활동하여 온 중견화가이다. 그는 오래전에 화가로 입문하면서 미국 인상주의 화가들을 연구하고자 자료를 수집하였다. 그리고 15년 전인 2000년부터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이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최근 전자책(e-Book)의 시대에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고 작년 9월부터 올해 10월까지 [미국의 인상주의 미술 시리즈]로서 총10권의 전자책 (e-Book)을 발간하고 있다. 

■ 전5권에 수록된 260명 화가의 1,700점 명작 

이번에 출간한 <미국 인상주의 걸작선> (전5권)은 1874년에 인상주의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지 140년 동안 미국의 인상주의 거장들 260명중에서 대표적인 작품 1,700점을 선별하였고, 이를 장르별로 5권의 전자책 (풍경화 500점, 바다풍경화 270점, 인물화 350점, 초상화 및 누드화 340점, 꽃과 정물화 240점)으로 나누어 발간하고 있다. 

작품의 내용은 유럽 인상파의 스타일과 사뭇 다른 미국적 인상주의 스타일로 묘사되어 있고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드물게 소개되는 것이다. 인상주의의 두드러진 특색은 소재의 다양성(多樣性)과 더불어 화가자신의 고유성(固有性) 및 표현방식인 스트로크의 개별성(個別性)을 들 수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유익하게 관찰할 수 있다. 

■ “2014 우수 콘텐츠 전자책”으로 선정 

2014. 9월에 국가기관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으로부터 《2014년 우수 콘텐츠 전자책》으로 아래 3권이 선정되었다. 즉 <미국 인상주의 걸작선-풍경화 Color 500점>, <미국 인상주의 걸작선-바다풍경화 Color 270점> 및 <미국 인상주의 걸작선-인물화 Color 350점>이다. 

이 책들은 청소년을 포함하여 남여노소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볼 수 있는 것이 특색이다. 먼저 훌륭한 회화작품을 통하여 미국과 유럽 등 서구문화의 폭넓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을 있으며, 또한 작품을 통하여 감수성의 발달, 창의성의 개발 등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미국 인상주의 화풍을 이룬 중심적인 화가들 

1874년에 프랑스의 모네(Cloude Monet)는 최초의 인상파전(印象派展)을 통하여 인상주의 화풍으로 서구미술에 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1883년에 모네가 정착한 지베르니(Giverny)라는 시골마을은 후일에 국제적인 ‘인상파의 메카’가 되었다. 즉 1885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30년 동안 전 세계 18개국에서 350명의 화가와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스스로 찾아 들었다. 이중에 미국 화가는 300명으로 거의 대부분이었고 모네와 지베르니는 결국 ‘미국 인상주의의 모태(母胎)’가 되었다. 

미국 인상파의 중심인물은 2013년 9월에 발간한 [모네와 114명의 지베르니아이츠] 전2권에 소개된 존 싱어 서전트 등 98명의 미국화가가 주축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2014년 6월에 발간한 [The Ten-미국 인상주의 거장들] 전2권에 소개된 11명(2명은 지베르니아이츠 포함)의 화가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책에는화가들이 구사한 스타일과 인상주의 기법 및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저자가 오랜 기간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활용하여 설명하였다. 

이번에 저자가 5권의 시리즈를 발간하면서 총 260명의 인상파 화가 중에 나머지 153명은 위의 화가들로부터 새로운 인상주의를 전수받거나 후진으로 양성되었으며 또한 전국에 화가마을과 부흥에 다같이 참여한 인물이었다. 

인상주의는 오늘날 ‘불멸(不滅)의 화파(畵派)’로 140년 동안 인기가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이 책에서 유럽보다 미국에서 인상주의가 가장 활발히 전개된 역사적인 배경에서 이루어진 작품의 진수(眞髓)를 보게 될 것이다. 인상주의 작품은 추상성(抽象性)과 동시에 장식적(裝飾的)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기 때문에 디자인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저자는 작품 감상위주로 편집하기 위하여 전자책에 적합하게 “빛의 삼원색”인 RGB(Red, Green, Blue)의 선명한 파일에다 캡션(화가, 제목, 제작연도, 소재, 크기)을 넣어 편집하였다. 또한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은 태블릿과 노트북, 화면이 넓은 스마트폰 및 e-Book 리더 등의 모니터로 볼 때 확대시키더라도 선명한 이미지와 함께 화가의 붓터치까지 살펴 볼 수 있도록 종횡의 최대 화면크기를 1,500픽셀로 크게 편집되어 있어 마치 전시장에서 보는 느낌을 갖게 하고 있다.

 


 

 
 

 

 
 

 

 
 

 

 
 

 

 
 

 

 
 
 
판매처 : 교보문고, 리디북스 인터파크,  YES 24,알라딘, 반디앤루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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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The Ten -미국 인상주의 거장들

■ 프랑스 모네의 인상주의 혁명(革命)처럼 미국에서 The Ten이 혁명을 일으키다.

The Ten'은 ‘10인의 미국 인상주의 화가들’ (Ten American Impressonism Painters)의 약칭이다. 19세기 말에 미국에서 인상주의를 표방한 화가그룹은 처음이었다. 프랑스에서 140년 전인 1874년에 모네가 주도하여 공식적으로 인상주의가 등장했다. 1886년까지 12년간 여덟 번 전시에 많은 난관을 거쳤다. 그러나 인상파는 서구미술 역사에 일대 변혁을 이룬 혁명(革命)이었다. 미국에서 인상주의의 전파는 1878년 보스턴에서 개최되었다. 그 후 프랑스 인상파 작품전시가 뉴욕 등 전국적으로 이어졌다. 또한 유럽에 진출한 미국 화가들도 귀국하여 인상주의 작품 전시와 창작 및 후진교육을 이어갔다. 

■ 보수적이고 상업주의인 미국화가협회로부터 10명 회원이 탈퇴 

뉴욕에 본부를 둔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Design)는 1863년에 설립되었으나 14년 후인 1877년에 아카데미의 운영이 보수적(保守的)이라는 이유로 미국화가협회(Associated American Artists)가 분리(分離)하여 독립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897년에 The Ten이 반기(反旗)를 들었다. 이들은 전원이 저명한 프랑스의 ‘에콜 데 보자르’와 ‘줄리앙 아카데미’ 및 독일의 ‘왕립 아카데미’에 수학한 유럽 유학파 출신이며 40대 초반의 중진화가들이었다. 

탈퇴의 주된 이유는 협회가 과거 20년 전에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로부터 분리될 때의 이유처럼 보수적이라는 이유와 또한 상업주의에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협회 간부가 배심도 없이 자기 작품을 전시하는 일도 있었다. 미국화가협회는 그 후 활기를 잃다가 1906년에 종말을 고했다. 이는 The Ten이 구성된 지 8년 후의 일이었다. 즉 협회의 모체인 뉴욕의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에 다시 합병되어 버린 것이다. 

The Ten은 1898년 3월에 뉴욕의 ‘뒤랑 뤼엘 갤러리’에서 제1회 전시회를 개최하고 1918년까지 20년 동안 32회에 걸쳐 뉴욕과 보스턴 등의 도시에서 이어갔다. 일반 애호가들은 다음에 열릴 전시에 많은 관심을 가질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The Ten의 화가는

① 전 세계 인상주의의 대가가 된 윌리엄 M. 체이스,

② 지베르니에서 모네와 같이 생활하고 환상적인 여인을 그린 토머스 W. 듀잉,

③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의 회장이 된 줄리언 A. 위어,

④ 하버드 대학의 미술학부를 나온 에드워드 E. 심먼스,

⑤ 모네와 자주 비견되는 존 H. 트와치먼,

⑥ 독일 뮌헨 왕립 아카데미를 나와 뛰어난 초상화와 인상주의 스타일 기법을 지닌 조셉 R. 디켐프,

⑦ 1885년부터 4년간 지베르니에서 모네와 같이 그림을 그린 윌러드 L. 메트캐프,

⑧ 독특한 인상주의의 스타일을 개발한 프레드릭 C. 하삼,

⑨ 장식적 인상주의 스타일을 구사한 로버트 L. 레이드,

⑩ 세 사람의 미국의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리고 미국 인상주의의 최고봉의 화가중의 한 사람인 에드먼드 C. 타벨,

⑪ 미국에서 역대 가장 많은 미술상을 받고 정통적인 인상파 스타일을 구사한 프랭크 W. 벤슨 의 11명 거장들이다.

■ 프랑스와 미국의 인상파에 대한 여론(輿論)과 사회적 수용(受容)의 차이 

인상주의에 대한 사회적인 반대와 호응 등의 여론은 미국과 프랑스를 비교하여 19세기 말부터 크게 달랐다. 먼저 프랑스는 오랜 전통으로 아카데믹 미술에 대한 보수 성향(保守 性向)이 강했다. 정부나 미술학교의 교수 및 비평가들은 모두 새롭고 혁명적인 인상주의에 대하여 일제히 반대했다. 프랑스에서는 인상파를 반대하는 분위기로 인하여 공식적인 교육기관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환경은 프랑스와 크게 달랐다. 1970년 전후에 프랑스에서 인상파가 발아되던 시기는 미국은 1861년~1865년의 남북전쟁을 종료하면서 국내가 안정되었고 산업전반에 눈부신 부흥을 이루었다. 화가들은 예술의 수도(首都)인 파리와 독일의 뮌헨 등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귀국하기 전부터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았으며 귀국 후에는 그림 작업과 더불어 미술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또한 미국의 전역에서 1885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프랑스 모네의 지베르니(Giverny)와 같은 올드라임(Old Lyme)등의 화가마을을 조성했다. 이와 같이 현상은 미국 국민들이 혁신의 사조(思潮)에 민감했고 특히 새로운 인상주의 화풍에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미술학교에서 수업과 화가마을로 인하여 제2세대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크게 양성되었다. 

The Ten의 멤버들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 미술을 진취적으로 혁신시킨 공로를 쌓았다. 나아가 미국의 인상주의는 프랑스와 다르게 20세기 이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시켜 현대미술의 흐름에 중심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이 인상주의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불멸(不滅)의 화파’를 이루는데 초석을 다졌다.


 책소개  :  모네와 지베르니아이츠  (전자책)

                ( Monet & 114 Givernyites ) eBooks

          제1권  ( 총 472 쪽, 그림파일/ 693개 ,  PDF/ 17.62MB) 

      제2권 (총441 쪽, 그림파일/ 556개, PDF/18.16MB)

              판매처 : 교보문고, 리디북스 인터파크,  YES 24

 

   한국미술협회   KFAA 미술신간서적 안내

 
 
 

PDF  모네와 지베르니아이츠 제2권 

056. 가이 올랜드 로즈 -조영규 지음,교보문고 2013.9.10 신간발간

 

 
 
종이책 발간 (POD 준비중)

 

출판사 : 아트월드

저자 : 조영규  (서양화가)



책소개

▶  전 세계 18개국 350명 화가가 30년간 지베르니를 찾아간 이유는?

1874년에 제1회 인상파 전시가 파리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그 후 140년이 지나도 인상주의는 오늘날 서구미술의 중심위치에 우뚝 서서 “불멸(不滅)의 화파”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인상주의가 왜 불멸의 화파가 되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인상파 미술의 모태(母胎)와 발원지인 지베르니에서 열심히 생활한 350명 지베르니아이츠(Givernyites)의 작품과 생애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인상파 전시를 주도하고 선구자(先驅者)가 된 모네는 43세인 1883년에 그가 평소에 염원했던 지베르니에 정착하여 평생소원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불과 2년 후인 1885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 30년간, 미국 화가 300명을 포함하여 전 세계 18개국에서 350명의 예술가들이 각자 스스로 찾아와서 신비한 예술가 공동체(Art Colony) 즉 화가마을을 이루었다.

미국 화가들이 대부분인 것은 당시 유럽의 인상파는 전통적인 아카데미 미술 즉 보수(保守)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새로운 인상파에 대하여 핍박(逼迫)과 냉대(冷待)를 일삼아 소외(疏外)되고 등한시 된 점이 많았다. 반면에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오히려 혁신적인 사회로 발전되고 가치관이 변화되어 미술에 있어서도 참신한 스타일의 인상주의에 일반인의 관심이 많았고 보다 개혁적이고 수용(受容)에 진취적이었다.

▶  파리 최고의 아카데믹 교육을 받았고, 장래가 보장된 화가들이 귀국하지 않고 지베르 니아이츠가 된 이유?

이들은 미국 등 자국에서 최고의 미술학교를 나온 후에 파리에서는 더 높은 수준의 미술공부를 위해 에콜 데 보자르, 줄리앙 아카데미 등에서 인물과 초상에서 최고의 아카데믹 미술을 배운 화가들이었다. 이들은 바로 귀국해도 그들의 장래가 보장되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19세기 후반에 걸쳐 산업사회가 격변하는 추세에 맞추어 미술세계에서도 크게 전환되는 것을 간파한 변화촉진자(Change Agent)들이었다. 즉 미술의 조류가 장차 인간본성의 심미감을 살린 인상주의로 변화됨을 예지(叡智)로 간파하고 지베르니로 향했다. 당시 인상파는 공식적인 교육기관이 없었고 이론적인 체계도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지베르니에서 인상파의 원형(原型)을 탐구하면서 세월이 흐르자 자연히 형성되기 시작한 인상파의 기법과 특징이라는 공통분모(共通分母)를 차츰 파악하기 시작했다.

▶ 인상파는 앞으로도 화가의 개성과 기법에 따라 창의적이고 무한한 작품이 창조(創造)될 수 있는가?

모네는 제자를 두지 않았지만 이들의 작품을 본다면 모네를 카피(Copy) 하거나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없었다. 이 책을 본다면 각양각색의 작품에는 독특한 개성과 기법이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인상파의 작품은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원초적(原初的)인 욕망(慾望)’을 채워 나갔는데 그 배경에는 그칠 줄 모르는 일반인의 사랑이 있었다.

인상주의의 주된 특징은 먼저 주제(Motif)의 다양성(多樣性), 화가의 자유스런 개성(個性)과 더불어 표현방법의 무한성(無限性)을 들 수 있다. 특히 인상파의 개성이 나타나는 데에는 각자 스트로크(stroke)의 변화무상성(變化無常性)에서 기인하였다.

앞으로도 이러한 세 가지를 매트릭스로 조합할 때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무한한 작품과 또한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작품이 창조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인상파가 현대미술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면서 불멸(不滅)의 화파라는 말이 생성된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다.

향후 우리나라에서도 훌륭한 인상파의 화가들이 얼마든지 나와서 이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할 여지를 충분히 바라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오래 된 문화적 슬기를 이어 받았다. 또한 전 세계에서 두뇌수준이 가장 높으며 더불어 높은 경제수준의 향상도 뒷받침하게 되었다. 따라서 다음 단계는 문화예술(文化藝術)의 창달(暢達)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견은 백범 김구(김구) 선생이 말한 것처럼 “나의 소원은 부자가되는 것보다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고, 높은 문화의 힘을 한없이 가지고 싶다” 는 것처럼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역사적으로 빛낸 것과 같이 문화예술의 본거지로 만들 수 있는 일이다.

▶  지베르니아이츠의 작품과 생애를 새삼 살펴볼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이와 같이 140년 전에 인상주의의 출발점(Starting Point)이 되었던 지베르니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3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한 가지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활동한 지베르니아이츠의 작품과 상상하지 못할 여러 가지 애환(哀歡)이 담긴 생활이야 말로 우리들이 값지게 살펴 볼 가치(價値)가 있는 대상이 될 것이다.

또한 이야말로 아직도 더러 미궁(迷宮)에 빠진 듯 한 인상주의(?) 라는 질문에 인상주의의 실체(實體)를 알고자 의문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중에는 10년~40년까지 장기간을 지베르니에서 꾸준히 지낸 화가들이 많았다.

일반적으로 화가들은 성장 과정에서 여러 관심사항과 많은 인물을 대하면서 크게 영감(靈感)을 받는다. 그리고 많은 지역을 섭렵할 때에도 감동(感動)을 크게 얻는다. 또한 일생을 통하여 다른 화가와 수많은 작품으로부터 표현키 어려운 뉘앙스(Nuance)를 느낀다. 화가들은 이러한 정신적인 자극을 순간적(瞬間的)으로 예민(叡敏)하게 터득(攄得)하는 체질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화가들이 창작의 욕구를 끊임없이 채우고자 하는 데에서 비롯하여 여행과 견문은 물론이고 여러 사람과 작품으로부터 항상 신선한 자극을 받고자 원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행동이야 말로 모네를 찾아간 지베르니아이츠의 가장 큰 동인(動因)이었다. 따라서 이 책에서도 화가들마다 생애의 전환점에서 무엇을 느끼고 경험했는지 살펴보았다. 또한 미흡하지만 그들 주위의 영향 인물과 작품을 같이 포함시켜 해설하여 보았다.

이 책에 다룬 화가는 미국화가 98명과 더불어 미국 외(外) 다른 나라 화가 16명, 도합 114명이다. 즉 모네와 더불어 미국화가로서 유명한 존 싱어 서전트, 모네의 사위인 시어도어 버틀러, 장식적 인상주의 화가(Decorative Impressionist)인 프레드릭 프리세크 및 미국의 일류(一流) 여류화가로 인기에 있어 선두(先頭) 순위인 메리 카셋, 릴라 C. 페리, 세실리아 보우 등이 된다.

▶ 19세기 인상파라는 전위예술(前衛藝術 아방가르드)이 오늘날 아카데믹한 미술이 된 이유는?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작품의 가치(價値)와 심미적(審美的)인 아름다움을 보는 안목을 가진 일반 관람자(一般 觀覽者)들이 인상파의 가장 큰 애호자였기 때문이다. 작품 구매라는 수요(需要)가 없었다면 어떻게 화가들의 창작행위인 공급(供給)이 140년 동안 꾸준히 이어져 왔겠는가? 이러한 이유로 인상주의는 초기에 아방가르드 즉 전위예술(前衛藝術)로 간주되어 불안하고 금방 사라질 듯 한 운명이었지만 이내 서구미술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발전을 이룬 것이다. 여기에는 모네와 지베르니아이츠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소개

저자는 서양화가로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여 졸업하였고 대학원에서 경영학 과정을 수료했다. 홍익대 미술디자인 교육원에서 서양화 실기과정을 수년간 수학하고 롯데백화점 본점 에비뉴엘 갤러리와 한전아트센타 갤러리 등에서 10회의 초대개인전을 개최했다. 특히 2010년은 [안중근 의사 순국(殉國) 100주년]을 맞이하여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이봉창 등 의열(義烈)과 신채호, 안창호, 이회영 등 42명의 독립운동가 초상화를 2년간 제작하여 국내에서 드물게 독립운동가의 초상화 개인전을 개최했다. 또한 다수의 국내·외 연합전과 공모전에 참가하고 뉴욕 맨허튼에 1871년 설립되어 가장 오래된 살마군디 갤러리에서 국제사실인물화 공모전과 대만의 국제미술 공모전 등에 입상했다. 현재는 안양의 스튜디오에서 풍경화 및 초상화를 그리는 전업화가로 활동 중이다. 14년 전인 2000년부터 19세기 이후의 미국 및 유럽 인상주의 화가들 작품과 생애를 홈페이지에 소개하여 왔다.

저서는 [지자제본격실시후 SOC확충,1995,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이 있다.



목차

 

제1권 ( 총 500페이지, 693개-그림파일, PDF-47MB) 에는

▸ 책을 내며 ­ 아름다운 인상(印象)

▸ 18c-20c 인상주의 연대표

▸ 1900년경의 지베르니 지도

▸ 차 례

▸ 머리말

▸ 인상주의의 개념(槪念)

▸ 인상주의의 태동(胎動)

▸ 미국(美國)의 인상주의

▸ 본문에 55명의 화가는

① 모네의 가족 화가 3명, 클로드 모네, 블랑슈 오슈데 모네, 버틀러

② 1880년대의 초기(初期) 16명-윌러드 L. 메트케프 등

③ 1890년대의 중기(中期) 20명-루이스 P. 데싸 등

④ 1900년대의 후기(後期) 8명-월터 메치원 등

⑤ 미국의 부부화가 및 가족화가 중 1880년대의 초기(初期) 8명-필립 L. 헤일 등

제2권 (총 413페이지, 556개-그림파일, PDF-48MB )에는

▸ 인상주의의 기법(技法)

▸ 본문에 59명의 화가는

① 미국의 부부화가 및 가족화가중 계 22명

- 1890년대의 중기(中期) (17명)-가이 로즈, 로버트 보노 등

- 1900년 이후의 후기(後期) (5명) -존 프로스트 등

② 미국의 여류화가(조각가 포함)들 14명-메리 카셋, 릴라 C. 페리 등

③ 미국의 장식적 인상주의 화가들 9명-프레드릭 C. 프리세크 등

④ 미국 외(外) 다른 나라 14명-폴 세잔느 등

 



출판사 서평

저자는 서양화가로서 개인전을 10회에 걸쳐 활동하여 온 중견화가이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미국 인상주의 화가들의 자료를 수집하면서 2000년부터 웹사이트(과거 네티앙 부터)를 통하여 이를 소개하여 초기에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홈페이지에는 트래픽 용량의 제한이 문제였다. 최근 전자책 시대가 도래하여 수집하고 있던 자료를 정리하면서 PDF로 변환, 많은 자료를 실을 수 있는 책(eBooks)으로 발간하였다.

1885~1914년까지 30년간 350명이라는 지베르니아이츠 중에 1/3인 114명의 인상파 원형의 작품과 자료를 책으로 국내·외에 처음으로 소개하고 있다. 분량은 총 900페이지, 용량은 97MB (PDF 각 48MB, 49MB)로 1,260개의 작품 등으로 방대하여 많은 흥미를 갖게 한다.

인상주의는 오늘날 불멸(不滅)의 화파로 140년 동안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배경과 함께 앞으로 전망까지 헤쳐 보이고 있다. 따라서 미술(美術)과 문화예술(文化藝術)을 좋아하는 사람들, 미술을 공부하고 있거나 하려고 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 또한 앞으로 문화예술이 세계를 선도하는 시대가 옴에 따라, 미래세계에 더 훌륭한 자극(刺戟)과 창의(創意)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권해보고 싶은 훌륭한 책이다.

특히 우리나라 청·장년 화가들과 문화예술을 수행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140년간 이어온 인상파의 국제적인 원형(原型)과 실상(實狀)을 살펴보기를 희망한다. 나아가 장래 미술세계를 생각하면서 앞으로 세계적인 인상파 국내 화가들이 속출하기를 기대해 본다.



책속의 한 문장

지베르니를 찾아온 전 세계 350명의 청. 장년 화가 및 예술가들 즉 지베르니아이츠는 모네의 그림에서 자신들의 먼 장래에 이상적(理想的)인 세계를 바꾸어 보았을 것이다.



      책을 내며      -------------------   아름다운 인상

인상주의 미술에 있어 유럽에서 대표적으로 활동한 화가는 모네를 위시한 르누아르, 드가, 시슬레, 마네, 피사로, 카셋 등과 세잔느, 고흐, 고갱 등의 후기 인상파 화가들을 들 수 있다. 모네는 43세인 1883년에 파리를 떠나 80km 떨어진 지베르니에 그의 평생 염원을 이루고자 정착했다. 이 시기는 파리에서 인상주의 전시회가 1886년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인상주의 전시에 [인상-일출]이란 타이틀의 작품에 온갖 악평과 비난을 당하면서 드디어 선도적인 제창자로 인정을 받았다.

모네가 지베르니에 정착한 2년 후인 1885년부터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18개국에서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350명의 많은 화가와 예술가들이 이곳을 찾아와 마을에서 같이 생활했다. 화가들이 일시에 모여들자 1887년부터 여인숙은 버디호텔로 변하고 숙소와 더불어 식당과 스튜디오가 마련되고 카페가 열렸다. 1890년경에는 80명 정도로 모이게 되자 개별적으로 숙소를 매입하거나 세내어 예술가 공동체Art Colony 즉 화가마을로 차츰 변했다. 이들은 ‘지베르니의 사람들’과 ‘지베르니의 신봉자(信奉者)’들이 되어 지베르니아이츠Givernyites로 불렸다. 그런데 모네는 이들을 결코 초청(招請)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제자(弟子)를 두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슨 연유로 지베르니를 찾아간 것일까? 필자는 이 책을 쓰기 오래 전부터 아래와 같은 여러 가지 의문점을 갖게 되었다.

▶ 350명의 화가 등 예술가는 지베르니의 모네를 왜 스스로 찾아간 것인가?

▶ 이들은 모네의 작품을 단지 카피(Copy)하기 위해서 이었는가?

▶ 지베르니아이츠는 10년~20년 이상을 지낸 화가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 부부나 형제, 자매, 모자, 모녀 및 자녀들과 같이 와서 생활한 이유는?

▶ 방문한 화가 외에 조각가, 작가, 시인, 사진사 등 다양하게 모인 이유는?

▶ 방문화가 중에 미국화가 등이 약 300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 이들은 미국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 등에서 최고미술교육을 받은 이유는?

▶ 이들은 유명한 에콜 데 보자르나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배운 이유는?

▶ 미국과 파리의 최고 아카데믹 미술교육을 받은 이후 지베르니로 간 이유?

▶ 전 세계 18개국에서 화가 들이 지베르니를 지속적으로 방문한 이유는?

▶ 이들이 귀국하여 인상주의 전파와 많은 제자를 길렀는데 그 이유?

▶ 1874년에 제1회 전시회 개최이후 비평가들이 악평과 조롱을 한 이유는?

▶ 1886년 제8회 전시회가 개최된 12년 동안에 인상주의가 성공한 이유는?

▶ 당시 진취적인 인상주의가 유럽보다 미국 쪽에서 인기가 높은 이유는?

▶ 지금 현대미술의 중심에서 인상주의가 대중의 인기를 끄는 이유는?

▶ 1874년 제1회 전시 이후 140년 경과된 인상파는 계속 번성할 것인가?

▶ 인상주의 이해와 작품관람을 위한 인상파 개념, 태동 및 기법의 특징은?

▶ 장식적 인상주의(Decorative Impressionism)란 그리고 관련된 화가는?

▶ 가이 로즈 등 장식적 인상파 화가가 장기간 지베르니에서 생활한 이유는?

▶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 경매에서 최고가를 경신하는데 그 이유는?

▶ 우리나라 청년 화가들이 장차 인상주의에 진로를 가질 수 있겠는가?

▶ 일본의 화가와 화상들이 지베르니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실은?

▶ 일본의 우키요에가 유럽의 인상파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그 실상은?

▶ 일본의 우키요에가 1864년에 처음 소개된 배경과 만국박람회의 효과는?

▶ 일본화가가 인상파를 초기에 배우고 귀국하여 어떤 활동이 전개됐는가?

▶ 모네의 8,000개 작품 중 1,000점은 뒤랑 뤼엘이 주로 미국에 판매한 이유는?

▶ 유럽 화상과 미국 화가들을 통해서 많은 작품이 미국에 판매된 이유는?

▶ 뉴욕 메트로폴리탄 등 많은 작품이 소장된 이유와 장차 전 세계에 파급은?

▶ 장차 인상주의의 미래 추세는 어떠한 전망과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

▶ 인상주의는 현재의 인기처럼 불멸(不滅)의 화파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 현대미술의 중심인 인상주의 미술에 국내 미술인력 개발은 필요한가?

모네의 작품은 대부분 풍경화이었다. 따라서 그가 중무장을 하고 야외로 나가서 원하는 각도와 광선이 나올 때 까지 한없이 기다릴 나이가 지나자 자연을 집으로 옮겨 놓아야 갰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지베르니의 화려한 정원은 모네의 헌신적 노력으로 만들어 졌다.

모네는 어떠한 제자라도 두지 않는 것이 소신이었다. 단지 그들의 멘토가 되거나 관심사를 얘기하고 때로는 시어도어 로빈슨과 같은 귀국한 미국 화가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모네는 평생을 8,000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가 20세부터 사망한 해인 86세까지 작업을 계속했는데 이를 계산하면 매년 120점을 제작한 셈이었다. 이는 3일마다 평균 1점을 제작한 것으로 엄청난 다작(多作) 화가임에 틀림없다. 그의 작품 주제는 대부분 풍경화가 대부분이었지만 인상주의의 특징 중의 하나인 주제Motif의 다양성(多樣性)을 들 수 있다. 그는 프랑스 국내를 포함하여 영국과 네덜란드 등의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 과거 여러 대가들의 작품까지 연구하면서 그렸다. 또한 남이 생각하지 않은 연작(連作)등의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작품으로 세상과 주위 화가들을 놀라게 했다. 이러한 결과는 바로 작품으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지베르니를 찾아온 청. 장년 화가들은 모네의 그림에서 자신들의 먼 장래에 이상적(理想的)인 세계를 바꾸어 보았을 것이다.

114명의 지베르니아이츠의 작품을 본다면 서로 카피하듯이 모방한 화가는 없었다. 단지 모네의 작품을 통하여 크게 영감과 감명을 받거나 작품의 뉘앙스에 영향을 입었다. 또한 야외에서 같은 주제를 함께 나가 그린 적은 있었다. 그렇다면 흔히 인상주의의 특징으로 주제의 다양성(多樣性) 화가의 자유스런 개별성(個別性), 표현방법의 무한성(無限性)즉 스트로크stroke의 변화 무상성(變化 無常性)을 말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를 매트릭스로 조합할 때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무한한 작품들과 또한 서로 다르면서 독창적인 작품들이 창조될 수 있을 것이다.

지베르니아이츠 중에 지베르니에서 10년 이상을 생활한 화가들 들자면, 시어도어 버틀러는 모네의 사위이면서 41년, 멕모니스는 26년, 첵코슬로바키아의 라딤스키는 25년, 메리 페어차일드(멕모니스의 부인)는 20년, 루이스 리츠먼은 19년, 윌리엄 H. 하트는 16년, 리처드 밀러는 15년, 프레드릭 프리세크는 14년, 가이 로즈는 13년, 에텔 로즈(가이 로즈의 부인)는 12년, 릴라 케벗 페리(남편과 자녀와 함께 생활)는 11년, 로턴 파크는 12년, 폴 콩클링은 10년을 생활했다. 이들은 매년 주로 봄. 여름철 전후에 지베르니에서 작업을 하고나서 미국에 잠시 귀국하여 전시를 통하여 작품판매를 한 경우가 많았다.

당시 미국은 1865년에 남북전쟁이 끝나면서 유럽보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었고 부강해 졌다. 그리고 19세기 중반에 우세했던 허드슨 강파(派)의 보수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따라서 미국 미술가들은 청운의 꿈을 품고 유럽 땅을 밟았다. 이들은 예술의 수도인 파리에서 아카데미 교육을 받고 왕실이나 개인이 소장한 고대 및 르네상스 걸작들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접하고자 대거 진출했다.

또한 유럽은 1874년 이후에 인상주의 화가들에 대한 비평과 악평이 심했고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져 온 반면에 미국은 당시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인상주의를 유럽보다 쉽게 받아들인 점이 있었다. 이는 1880년대 전후에 유럽의 인상주의 작품들이 처음으로 전시되기 시작하자 진보적인 미국 일반시민들의 호응이 대단하였기 때문이다.

1874년부터 파리에서 제1회 인상파 전시를 통해 주도적인 역할을 한 모네의 작품 가치와 장래의 전망을 지베르니아이츠는 초기부터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미술학교에서 수학했고 또한 파리에서도 유명한 학교에서 아카데미식의 교육을 받아 그냥 귀국하여도 장래가 보장되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지베르니로 찾아들어 모네의 가까이에서 새로운 인상파의 실체와 원형을 알고자 했다.

즉 새롭고 혁신적인 인상주의의 시대적 조류와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이들 지베르니아이츠는 알고 있었다. 이들은 주로 화가들이었으나 조각가, 작가, 시인, 삽화가 및 사진사 등도 모여들어 예술가 공동체 즉 화가 마을을 조성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프랑스가 전쟁의 중심지가 되자 남았던 화가들은 거의 고국으로 되돌아갔다. 이 책에서는 지베르니를 거친 인상파 화가들 즉 모네와 114명의 ‘지베르니의 예술가들’인 지베르니 신봉자(信奉者) 즉 ‘지베르니아이츠Givernyites’는 어떤 이유로 지베르니로 갔는지? 또한 어떤 생활을 하면서 작품을 제작했는지? 등이 궁금했다. 그래서 그들의 아름다운 생애와 훌륭한 작품을 이 책을 통하여 소개해 보고자 한다.

독자 분들에게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에서는 모네와 지베르니에 30년 동안 찾아온 미국 및 다른 나라의 화가 350명 중에서 약 ⅓인 모네를 포함하여 114명을 골랐다. 또한 편의상 그룹별로 대별해 보았다.

제1권에는 도입부에 [인상주의의 개념(槪念)]과 [인상주의의 태동(胎動)] 및 [미국(美國)의 인상주의]기술했다. 제1권에 수록된 55명의 화가 등은 ① 모네의 가족 화가 3명, 그리고 각 그룹에서 제외되는 화가들을 시기별로 ② 1880년대의 초기(初期) 16명, ③ 1890년대의 중기(中期) 20명, ④ 1900년대의 후기(後期) 8명 ⑤ 미국의 부부화가 및 가족화가(조각가 포함)중에서 1880년대의 초기(初期) 8명의 화가들이다.

제2권에는 도입부에 [인상주의의 기법(技法)]을 적었다. 제2권에 수록된 59명의 화가 등은 ⑴ 미국의 부부화가 및 가족화가(조각가 포함)중에서 1890년대의 중기(中期), 1900년 이후의 후기(後期) 22명, ⑵ 미국의 여류화가(조각가 포함)들 14명, ⑶ 미국의 장식적 인상주의 화가들 9명(가이 로즈를 포함하여 10명), ⑷ 미국 외(外) 다른 나라 14명의 화가들이다.

“그림 작품이 걸린 실내는 마치 생각(生覺)을 걸어놓은 방과도 같다” -영국의 초상화가, 조슈아 레이놀즈 경(卿) (1723~1792)

 


글을 마치며 ------------------       불멸 (不滅)의 인상주의

1874년 프랑스 파리에서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가 개최된 지 140년이 지났다. 당시 인상파 전시를 주도하고 선구자 Forerunner(先驅者)가 된 클로드 모네는 43세인 1883년에 그가 평소에 염원했던 지베르니에 정착하여 소원을 이루기 시작했다. 불과 2년 후인 1885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 30년 동안 모네는 그들을 초청치 않았으나 새로운 인상파에 주목하고 관심이 많던 전 세계 350명의 청·장년 화가들이 스스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들 ‘지베르니아이츠 Givernyites’ 즉 지베르니의 화가들은 생애를 걸고 인상파 원형(原型)의 작품을 실험하고 창조해 나간 사람들이다. 그곳 지베르니는 새로운 미술의 모태(母胎)와 발원지(發源地)가 되었다. 중심에는 모네와 지베르니아이츠가 있었다. 그러나 개성과 기법이 다른 화가들은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화가마다 독특한 인상파의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작품이 계속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들 지베르니아이츠는 미국 등 자국의 유명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마친 사람들이었다. 또한 더 나은 미술교육을 위해 파리, 뮌헨 등 유명 아카데믹 교육기관에서 주로 인물과 초상을 위주로 수학했다. 또한 이들은 파리살롱의 배심을 통과하여 전시했고 만국박람회에 출품하여 기량을 과시한 화가들이었다. 그들은 귀국하면 바로 장래가 보장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모네가 있는 지베르니로 가서 상당기간을 새로운 화파의 진면목을 다시 배우고자 하는데 에는 고된 생활이 따랐으나 마다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는 19세기 중반이후 서구가 산업사회로 크게 격변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동인(動因)이었다. 인상주의는 19세기 중반부터 당시 유럽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추세에 맞추어 점진적이면서 필연적으로 생겨난 움직임 속에 발아되었다. 유럽의 미술세계도 종래 아카데믹한 초상화와 인물화 위주의 인문중심(人文中心)에서 풍경화의 관심과 흥미로 바뀌는 자연중심(自然中心의 흐름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즉 산업사회가 진전되어 갈수록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원초적인 희구(希求)와 욕망(慾望)에 따라 미술의 흐름도 역전(逆轉)되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특히 미국은 350명 중에서 85%에 달하는 300명의 화가 등이 방문하여 지베르니는 사실 미국의 예술가 공동체 Art Colony 즉 화가마을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이는 새로운 미술의 흐름에 대하여 유럽보다 미국에서 오히려 개혁적이면서 수용(受容)이 빨랐던 원인이었다.

이러한 모든 증거는 지베르니에서 마담 버디 Madame Burdy가 운영했던 버디호텔의 ‘방명록(芳名錄)’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여러 화가들이 보낸 편지(便紙)나 회고록(回顧錄) 및 여러 형태의 자료에 자세한 상황이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것은 그들이 지베르니에서 그린 작품(作品)에서 인상주의 본래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두 권의 책에는 350명 중에서 약 1/3인 모네를 포함하여 114명의 지베르니아이츠Givernyites의 생애(生涯)와 작품을 실었다. 당시의 인상파에는 공식적인 교육기관이 한군데도 없었고 이론적인 체계가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과거 파리의 유명한 에콜 데 보자르, 줄리앙 아카데미 등 교육기관을 관장하던 미술 교수와 저명한 미술 비평가 및 프랑스 정부 측은 이러한 새로운 인상주의의 혁명적인 출현과 기성 화단을 부정하는 데에 반기(反旗)를 들면서 여덟 번 전시의 초기에는 악평과 조롱을 일삼았다.

그러나 한마디로 결론을 말한다면, 이러한 새로운 예술적 흐름에 대한 승자(勝者)와 패자(敗者)는 1874년부터 1886년까지 인상파 전시가 개최된 12년 동안에 서서히 갈라져 버렸다. 먼저, 미술의 흐름을 가장 민감하게 파악했던 이름난 비평가들은 결국 굴욕적인 패자가 되었고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 대신 당시 인상파의 장래가 극도로 불안했지만 서구미술의 추세를 감각적으로 인식했던 모네 등의 초기 인상파 화가들과 이를 따른 지베르니아이츠는 고난 끝에 값진 영광의 승자가 되었다. 또한 인상파 작품을 매입할까 하고 망설였던 화상(畵商)들 중에 위험한 투기(投機)였지만 예지(叡智)와 확신을 가지고 작품을 매입했던 뒤랑 뤼엘 등은 미국을 위시한 전 세계 미술시장을 휩쓸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작품의 가치(價値)와 심미적(審美的)인 아름다움을 보는 안목을 가진 일반 관람자(一般 觀覽者)들이 가장 큰 승리자들이었다. 작품 구매의 수요(需要)가 없었다면 어떻게 화가들의 창작행위인 공급(供給)이 140년 동안 꾸준히 이어졌겠는가? 이런 이유로 인상주의는 초기에 아방가르드 즉 전위예술(前衛藝術)로 간주되어 불안하고 금방 사라질 듯 한 운명이었지만 이내 서구미술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발전을 이루었다. 인상주의가 등장한 이후에 이로부터 드디어 야수파, 표현주의, 추상화, 입체파 및 상징주의 등의 여러 모던 아트Modern Art가 연이어 파생되었다.

이 책으로 인상주의가 오늘날 현대미술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서 불멸(不滅)의 화파로 인기가 지속되는 점이 다소나마 독자들께서 이해될지 기대해 본다. 미술과 예술인의 성과물인 회화와 조각 등 예술작품의 창조에는 철학적인 원칙(原則)과 사리(事理)가 있다. 특히 화가들은 성장 과정에서 각자 관심과 흥미로 교육과정을 거치고, 주위 관련인물을 만나서 영감(靈感)을 받는다. 그리고 많은 지역을 여행하고 그곳으로부터 감동(感動)을 얻는다. 화가는 일생을 통하여 수많은 화가와 작품으로부터 표현키 어려운 뉘앙스(Nuance)를 느낀다. 또한 화가는 수많은 대상Motif으로부터 순간적으로 예민하게 영감과 감동과 뉘앙스를 터득하는 체질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화가들은 끊임없이 채우고자 하는 창작의 욕구로부터 많은 여행과 견문은 물론이고 여러 사람과 작품으로부터 신선한 자극을 받고자 원했다. 따라서 이러한 행동이야 말로 모네를 찾아간 지베르니아이츠들의 가장 큰 동인(動因)이었다. 따라서 이 책에서도 미흡하나마 화가마다 생애의 전환점에서 무엇을 느끼고 이루었는지 살펴보았으며 짧지만 생애와 주위의 인물을 작품과 같이 포함시켜 해설하여 보았다.

이와 같이 140년 전(前) 인상주의의 출발점(Starting Point)이 되었던 지베르니라는 한정된 지역에서 3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한 가지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활동한 지베르니아이츠의 작품과 상상하지 못할 여러 가지 애환(哀歡)이 담긴 생활이야 말로 우리들이 값지게 살펴 볼 가치가 있는 대상이 될 것이다. 또한 이것이야 말로 아직도 더러 미궁(迷宮)에 빠진 듯한 인상주의(?) 라는 질문에 인상주의의 원형(原型)을 알고 싶어 하는 모두의 욕구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14명의 지베르니아이츠 중에 여류화가들이 33명으로 약 29%를 차지하고 있다. 당시는 여성의 미술계 진출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파리의 미술학교 입학도 에콜 데 보자르는 1879년까지는 허용되지 않았으며 누드수업도 제한을 받았다. 그러나 메리 카셋 다음의 ‘제2의 미국 여류화가’의 자리를 성취한 릴라 C. 페리처럼 1885년 미국 화가들이 최초로 지베르니를 방문한 시기인 37세에 이미 세 아이의 어머니로서 자국에서 독학(獨學)으로 출발한 사례는 참으로 귀감(龜鑑)이 되었다. 페리는 37세에 미국의 카울레스 미술학교를 수학하고, 39세에 파리의 콜라로시 아카데미, 40세~41세에 줄리앙 아카데미, 그 후 독일에서 프리츠 폰 우데로부터 장년의 여성이면서 그림을 배웠다. 그녀는 다시 1889년부터 지베르니에서 11년간 모네와 함께 생활하면서 인상주의를 실험하며 공부했다. 그녀가 1909년에 미국으로 귀국할 때는 나이가 61세이었지만 그녀가 그린 작품은 100년이 지나도 모든 이들에게 칭송을 받으며 기쁨을 주고 있다.

끝으로 이번 글을 쓰면서 지베르니아이츠 중에서 저작권(著作權)으로 사후(死後) 적용기간이 아직까지 경과되지 않은 훌륭한 화가들의 내용이 누락(漏落)된 점이 있었다. 또한 화가 명단은 파악되나 그들의 자료가 아직 미흡하고 공개되지 않은 점도 크게 아쉽게 생각한다.

끝으로 114명 지베르니아이츠의 작품과 활동내용을 단편적이지만 세상에 늦게나마 소개하는데 대하여 기쁘게 생각하면서 그간 수년 동안 책발간과 자료수집에 많은 격려와 용기를 준 가족들과 주위의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올린다.

2013년 9월 16일

경기도 안양시, 아틀리에에서

서양화가 조영규